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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즈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컸다. 기회가 돼 우리나라의 심각한 자연환경 훼손 문제 개선을 위해 그간 쌓인 적폐 중 꼭 청산해야 할 한 가지를 주문한 바 있다. 개발자가 작성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작성토록 바꾸자는 것이었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데 아직까지 우리 법에는 개발할 사람이 예정지의 자연환경을 조사하고 평가토록 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를 조성하려 산과 들을 매입했는데, 그곳이 보전을 통한 공익적 가치가 개발가치를 훨씬 능가하는, 국민 모두를 위해 보전되어야만 하는 곳이라면 개발당사자는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국익을 위해, 나보다는 국민을 위해 희생한다? 그런 일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며 초등학생에게나 감동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외부정보에 눈을 뜨고 사회적 기준에 의한 가치판단이 시작될 나이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정의’보다는 부정한 행위가 훨씬 거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과 법을 집행할 판사들조차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극히 일부에 의해 벌어지는 일탈로 전체를 깎아내리면 안된다며, 자극적인 언론의 문제를 탓하기에는 국민이 느끼는 불신의 골은 이미 너무 깊다. 국민은 이런 적폐를 청산하자고 하는데 청산의 시동도 제대로 걸지 않은 지금, 기득권층은 드러나지도 않은 사회문제 해결에 딴지를 걸며 피로사회를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다.

새 정부에 대한 많은 기대 속에 내심 환경영향평가법의 빠른 개정을 바라왔다. 늘 후순위인 환경문제는 역시나 이번 정부에서도 후순위였으며, 그나마 일부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은 알맹이를 쏙 뺀개정안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자연환경관리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자연보전 가치의 인식증진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이 문제를 정부는 왜 해결하지 않는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정부도 개발업체와 마찬가지로 보전보다는 개발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리라. 4대강의 졸속 환경영향평가, 사드기지, 최근 문제가 불거진 흑산도 공항이 그렇다. 수많은 정부 주도 개발사업은 토건세력과 정부의 암묵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빠른 진행에만 관심을 가지며 공익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이번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두어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공무원이 다수가 될 위원회에서 정부의 개발사업을 거짓으로 평가할 리는 만무하다. 정부위원이 과반수인 각종 위원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입맛대로 진행되는 과정을 이미 보아오지 않았던가?

일례로 지난 오색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조사자료는, 조사자가 산을 순간 이동하지 않는 이상 시간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조사결과가 자료로 제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를 포함한 정부관계자들은 절대 영향평가서가 ‘거짓’은 아니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조사원본 제출요구를 사업자가 받아들이지 않자, 이를 감시해야 할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설마 조사결과를 ‘거짓’으로 작성했겠느냐면서 사업자인 지자체와 조사업체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지자체의 일도 이러한데 중앙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은 어떨지 뻔하다.

제3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다면 가장 많은 제동이 걸릴 사업들은 눈앞의 표를 위한 공약에서 시작되는 정부의 대규모 토건사업들이 아닐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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