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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의 비상근 이사장으로서, 뒤셀도르프를 거쳐 베를린에 머물며 독일의 주요 에너지·기후변화 관련 싱크탱크를 만나고 에너지전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독일의 에너지전환 움직임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앞서 나갈 수 있는 걸까?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직후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켜 광범위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한 후 당시 17기 원자로 가운데 노후원자로 9기를 즉각 정지시키고 남은 8기를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줄여가기로 했다. 작년에 이미 1기가 문을 닫아 이제 7기만 남았다. 그 사이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점차 늘어나 지난해 전력 생산의 33.3%가 되었다. 원자력은 11.7%에 불과했다. 원자력발전에서 최고 25만명을 고용했는데 이미 재생가능에너지 일자리가 36만개로 원자력을 넘어섰다.

에너지전환이란 목표가 분명하니 흔들림이 없다. 더 이상 에너지전환이 옳으니 그르니, 목표가 현실적이니 그렇지 않으니, 그런 이야기가 설 자리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일 뿐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보다 다양하고 현명한 정책수단을 만들고 이행하며 혁신에 혁신을 더하고 있다. 건물 지붕과 벽면에, 도로와 유휴부지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고 경작지 한가운데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 떠돌고 있는 가짜뉴스들이 생각나 쓴웃음이 났다. 실리콘 기반 태양광 패널에는 있지도 않은 크롬과 카드뮴 타령에, 전혀 문제가 안되는 빛 반사나 온도 상승, 전자파 등을 거론하는 이들은 이런 모습에 무어라 말할까? 에너지전환이란 화두조차 이념의 대상이 되고 정치화되어버린 우리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질 따름이다.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지금처럼 성장하고 더욱 탄력을 받으며 추진되는 건 무엇보다 든든한 시민의 지지와 참여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시민들은 에너지전환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기꺼이 수용했다. 저렴한 전력 대신 재생가능에너지 지원을 위해 더 높은 요금을 부담하는 녹색요금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소득 수준이 높지만 추운 날에도 난방온도를 높이지 않고 실내에서 두꺼운 스웨터 껴입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여름 40도가 넘는 폭염에도 대부분의 시민은 에어컨 없이 한여름을 보냈다. 호텔이나 어디에도 하루 온종일 변좌를 데워두는 비데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먼 미래보다는 현재를 더 선호하는 시간선호가 있다고 하는데 독일인들과 대화해보면 이들은 곧잘 말한다, 미래세대를 배려해야 한다고. 경제학의 시간선호를 거스르는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당장의 금전적 이익보다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을 돌아보며 우리와 독일이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지형이나 지리적 조건이 다르고 경제규모와 인구밀도가 다르며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걸어온 에너지전환의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독일과 우리는 제조업 비중이 비슷하고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높은 유사성이 있기에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차이를 극복하며 에너지전환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시민이자 소비자인 일반대중의 인식과 선택,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에너지전환에는 진보와 보수가,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시민 스스로 에너지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로 나서자. 그런 참여에 이익을 주면서 에너지전환을 지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인에게 우리의 표를 행사하자. 에너지전환의 길에 함께하는 기업의 상품을 선택하도록 하자. 우리의 정치투표와 경제투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독일시민이 우리에게 그런 변화가 가능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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