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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창을 사납게 두드리던 비도 그치고
이른 아침, 햇살이 미친 듯 뛰어내린다
온몸이 다 젖은 회화나무가 나를 내려다본다
물끄러미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
간밤의 어둠과 바람 소리는 제 몸에 다 쟁였는지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을 떨쳐 낸다
내 마음보다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이
햇살이 따스하게 그 온몸을 감싸 안는다
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 서 있고 싶다
비바람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눈보라쳐도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
오직 제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 이태수(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요란하게 천둥과 번개, 돌풍을 동반한 비가 새벽에 쏟아지더니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날이 환하게 갰다. 시인은 창 너머에 젖은 회화나무가 서 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회화나무도 시인이 있는 쪽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둘 사이에 눈길이 오가고, 조용한 교감이 있다. 시인은 비바람과 눈보라가 오더라도 의연하게 당당하게 서 있는 회화나무를 바라보면서 변함이 없는 같은 자리, 제자리에 대해 생각한다. 본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본래의 자리는 깨끗하고 맑고 밝다.
높이 솟아 우뚝한 회화나무처럼 기상이 좀 굳세고 또 끄떡없어서 더러는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면서 우리에게 닥쳐온 일의 고비나 곤란함을 넘기기도 할 일이다. 조금은 과장되게 씩씩하고 호방한 체하면서.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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