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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을 도둑맞은 것 같다
거친 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다녀간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뿐이라고
그냥 가 보는 거라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구구구 모이 몇 알 주워 먹느라
할퀴며
깃털 뽑히며
두 날개 뭉개졌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가랑잎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 내리다가
내일은 어디일까
정말 어디를 흔들어야
다시 푸른 음악일까
문정희(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이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간곡한 기대는 곧잘 도둑맞는다. 그럴 때는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되기도 한다. 허허벌판에, 폐허에 홀로 서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이끌었을까. 시인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탄식을 실어서 시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을 썼고,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솨아솨아 하룻밤을/ 한 생애처럼/ 모래알을 읽었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 모래에 파묻혀 모래가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허탈감과 무력감이 높은 파도처럼 닥쳐왔더라도 우리는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야생처럼 뜨겁고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흔들었을 때 우리 삶의 실내(室內)에 푸른 음악이 흘러나오길 바란다. 마치 악기를 흔들면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듯이. 산들바람이 버드나무를 부드럽게 흔들면 연녹색의 싱그러움이 나오듯이. 푸른 음악은 어디에 깃들어 있는 것일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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