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장관순기자


ㆍ하나의 불씨가 세계를 불사르다 - 미국발 금융위기의 특징
ㆍ개인들도 금융버블 가담
ㆍ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

‘그날’이 오기 전 우리는 금융거품과 부동산거품이 두텁게 깔린 소파의 푹신함을 즐기고 있었다. 컴퓨터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해준 금융세계화의 신속성, ‘선진금융기법’이 약속한 장기호황의 기대감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우리가 달콤함에 취해있는 사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바람은 우리의 집과 직장, 재산을 쉽게 불에 탈 수 있게 바짝 말려가고 있었다. 대지가 건조해지면 단비가 내리는 게 시장의 원리라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외침과 달리 바짝 마른 대지 위에 마른 번개가 내리 꽂혔다. 2008년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것이다. 리먼이란 불씨는 순식간에 세계 금융의 심장부 월가를 집어삼켰고, 그 불길은 다시 전세계를 불태우고 있다. 지구에 발딪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도 이 불길을 피해갈 수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과거의 금융위기에 비해 확산의 속도 및 범위, 부실규모가 빠르고 넓으며 크다.

확산 양상은 1930년대 대공황에 비해 즉각적이며, 90년대 아시아 등지의 금융위기에 비해 포괄적이다. 대공황은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영국·프랑스·독일 등 제국주의 열강에 서서히 영향을 끼쳤다. 이 열강은 그 위기에 식민지 수탈 강화로 대응함에 따라 그 부정적 여파는 세계적 규모로 확산되었다. 선진국에서 발화된 위기가 전 세계를 위기에 몰아넣는 위험한 것이라면, 개발도상국발 위기는 개도국으로 그친다는 점에서 덜 위험하다. 역내 인접 국가로만 퍼졌던 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가 좋은 예이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아시아 금융위기는 2년에 걸쳐 아시아 지역에만 확산됐지 미국 등 선진국에는 닿지도 않았다”며 “반면 이번 금융위기는 불과 수개월 만에 전 세계 누구를 가릴 것 없이 ‘금융버블’에 가담한 모든 사람에게 파급됐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충격은 2개월 만에 오일 달러가 풍부한 중동 바레인의 아랍뱅킹에까지 미쳐 이 은행에 12억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투자손실뿐 아니다. 각국은 수개월 만에 세계 금융시장 경색에 따른 외자 이탈(환율 급등),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타격을 받았다. 지난 10월 말 세계 주요 주식시장 53곳은 지난해 말 대비 28조9527억달러(시가총액 합산)를 허공에 날렸다.






대공황 때 주요 피해 계층은 1차대전 이후 급등한 곡물가로 떼돈 벌었다 주식투자로 파산한 미국 농민 대다수, 경기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다. 이번에는 서민들의 ‘금융시장 적극 가담’에 따른 직접 피해가 많다. 인하대 경제학과 김진방 교수는 “인터넷 등 정보기술 발달, 각국의 개개인들까지 역외 금융상품에 직접 가담할 정도로 전 세계가 금융자유화한 점 등이 과거와 다르다”고 말했다.

규모면에서 미국내 최대 3조달러(약 4426조원)로 추산되는 전체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외환위기 때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빌려 메운 부실(583억달러)이나 미국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파산 때 부실규모(1000억달러) 등 10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금융위기의 지속기간을 과거와 비교하기는 아직 이르다. 위기 해소 기준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점도 있지만, 이번 금융위기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 경제토론회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최갑수 교수는 청중인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차원의 문제로 대공황 때보다 심각하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은 1945년 제2차대전이 끝나서야 사라졌다. 즉 이번 위기는 15년 이상 진행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여러분들 청춘이 다 지나간다는 뜻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