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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현 |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팽창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 금융위기가 더욱 발달된 자본시장과 고도화된 금융세계화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1929년 대공황이나 80년대 이후의 여러 금융위기들은 모두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행동이나 과도한 신용팽창에 기초해 발생했다. 그리고 그러한 금융행동은 대부분 자유방임적 경제사조에 힘입어 증대될 수 있었다. 1920년 대공황 직전까지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융시장은 자유방임의 사고 하에서 아무런 규제나 감독도 없이 시장자율에 따라 자유롭게 작동하고 있었다.

또한 80년대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서 다시 금융자유화가 전개되면서 금융활동이 자유와 시장자율에 따라 수행되었다. 그러나 자유방임과 시장자율 하에서의 금융활동은 1929년 미국에서나 80년대 이후 남미와 동아시아에서와 같이 투기적 행동과 과도한 신용팽창을 가져와 결국은 금융시장을 마비시키고 금융기관을 파산시키는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이번 금융위기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사조 속에서 시장 자율과 자유경쟁만을 강조한 자본시장 발전과 금융세계화 진전이 결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이에 기초한 자산유동화 증권과 같은 고위험의 투기적 금융거래를 과도하게 팽창하도록 만든 데서 발생했다. 따라서 이번 금융위기도 이전의 금융위기와 유사하게 기본적으로는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 팽창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는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가장 선진화된 금융기법과 가장 발달된 금융시스템을 갖는 미국에서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점, 은행의 대출채권 부실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유동화증권 등 유가증권 부실에 위기의 핵심이 있다는 점, 그리고 위기가 급속히 세계적 성격을 띠면서 세계화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1929년 대공황의 경우 금융활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식시장에 대한 규율 미비, 중앙은행의 잘못된 긴축정책, 예금보험제도의 결여 등이 금융위기를 발생시키고 또 확대시켰다. 80년대 이후 남미나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위험관리 기법과 효율적인 감독체제의 부족 등으로 인해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지 못한 결과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이전처럼 금융시장에 대한 무지나 금융시스템의 낙후, 또는 위험관리 기법과 감독체제의 미비 때문에 투기적 거래나 과잉팽창을 막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금융부문 전반의 발달이 투기적 거래와 과잉팽창을 부추긴 것이다. MBS, CDO 발행과 같은 유동화 기법의 발전과 CDS와 같은 보험상품의 발전, 그리고 자본시장을 통한 수시의 시장평가가 스스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과잉과 같은 투기와 팽창을 낳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시장의 유가증권 부실을 초래한 것이다.

또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달리 이번 금융위기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급속히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이것 또한 고도화된 금융세계화의 산물이다. 1929년 대공황 때에도 공황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는 했지만, 그때는 미국의 긴축정책과 국제적 금본위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의 확산은 금융세계화 속에서 전 세계의 자본시장이 연계되고 통합된 결과이다.

이와 같은 이번 금융위기의 특성은 선진 금융기법이나 효율적인 감독체제라 할지라도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속에서는 금융의 본성인 투기적 거래와 금융팽창을 억제할 수 없고, 금융위기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유방임과 시장경쟁 대신 금융안정과 경제발전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 질서와 공존에 바탕을 둔 새로운 경제질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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