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생 daresay@naver.com

스물둘. 이렇게 어떤 수식어도 덧붙이지 않고 멀끔하게 숫자만 말하면 더 냉정해질 수 있을까?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논거로 이루어진 침착한 칼럼을 쓸 수 있을까? 망설여진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게. 빈센트 반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던 시대만 해도 자살이란 어디까지나 그들 스스로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자살에 대해서는 언제나 “타살이나 다름없다!”라는 격분과 통한이 뒤따른다.

3년 전 쌍용자동차가 자행한 2646명의 정리해고 이후 22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세상을 떠났다. 하나같이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과 의문사였다. 정리해고가 그들에게 ‘살인’이나 다름없는 잔인한 조치였음을 방증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무자비하게 노동자들을 진압한 경찰, 그것을 지휘한 정권, 정리해고를 종용한 자본 모두 대답이 없다. 외려 경찰은 당시의 끔찍한 폭력으로 얼룩진 진압작전이 ‘우수 진압 사례’였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공권력이 어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


지난 3월31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아파트에서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이 알려진 것은 사흘 후다. 1월20일, 2월13일, 3월31일.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이렇게 죽은 이들의 숫자를 세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 절규에도 내내 묵묵부답인 자본과 정부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은 이들의 숫자에 비례해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의 총량이 상승할까?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점점 더 망설이고 뒷걸음질치며 더 큰 비관의 나락으로 빠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저 죽음들이 정권교체 따위가 이루어지면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부차적인 사안이라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보다 무감각해져서 죽은 이들을 헤아리며 당연한 풍경처럼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형식논리학을 빌려 이 말의 대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권력에 복종하는 길밖에 없다고.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을 지속할 자신감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것을 용기라고 해도 좋다. 누군가는 그래서 “쫄지마 씨바”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쌍용차 옥쇄파업 같은 실재적 폭력의 시간을 망각하지 않으며 ‘쫄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하게도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그것을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으면서도 유쾌하게 저항할 수 있도록 또렷한 정신을 지킨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총선이 코앞이다. 모두들 복지와 민생을 말하며 반성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대체 누굴 믿어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민생파탄과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선거가 되어야겠지만 과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대안을 얻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지지율 2, 3위를 달리는 두 야당의 전반적인 정책들이 새누리당이 겉으로 표방하는 공약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서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투구만 격화되고, 심지어 선거가 블랙홀처럼 느껴질 정도다.

 

현대자동차 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법 판결에 환호하는 전국금속노동조합 노조원들 I 출처:경향DB

선거가 정말 민주주의의 장이라면 무엇보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전례 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지 논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선거 모습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4년에 단 하루짜리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만이 연이은 죽음의 행렬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노동자들과 청년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대안일 게다. 그것은 정치인이나 당사자들만의 몫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쌍용차 해고노동자, 전국 곳곳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주위의 노동조건을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