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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2011년 이른바 안철수 열풍 때 썼다면, ‘선망과 정치와 절망의 정치’가 제목이 되었을 것이다. 자연인으로서 두 사람은 이력이나 캐릭터, 세대(1941년생, 1962년생) 등에서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안 의원을 야권의 대안으로 보는 이들은 MB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새누리당과 안 의원의 지지층은 겹쳐 있었다. 이번에도 ‘안철수의 독립’으로 새누리당 지지표가 10%가량 떨어졌다.

MB와 안철수는 당대 대한민국 대중의 워너비,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선망의 대상이다. 이들은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스타이며 이를 발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물론 성취 방법에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안 의원은 개인의 노력과 성실성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젊은이들의 희망이었다.

이에 반해 MB는 ‘기업인 출신=경제전문가’라는 이미지를 백분 활용했다. 긴 이야기지만, 사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그가 실제 한 일은 ‘경영’이 아니었다. 어쨌든 유권자는 그와 공모했다. “당신처럼 부자가 되고 싶다.” 더 나아가 갖은 세파와 ‘갑질’에 지친 대중은 그처럼 ‘강한(뻔뻔한) 인간’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정치는 자원의 분배를 결정하는 책임이고 선거는 그 대리인을 뽑는 첫 과정이다. 우리는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대표자가 아니라 ‘되고 싶은 사람’, 즉 자신이 욕망하는 인물에게 표를 준다. 이는 유권자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최악의 정치다. 권리를 반납하고 지배자와 동일시하는 이른바 ‘대중 독재’다.

대중의 선망을 받는 이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독재자보다 더 잔인한 면이 있다. 부도덕하고 무능한데도, 단지 유명하고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랑받는다면? 그런 사람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이들에게 잘해줄 이유가 있을까. 선망(羨望)은 ‘양(羊)의 고기를 보고 침을 흘리다’라는 뜻이다. 자기가 부러워 침을 흘리는 사람을 누가 존중하겠는가. 이때 통치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MB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그는 ‘신선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라는 서민의 소박한 요구조차 조롱한 인물이다.


안철수 의원이 22일 대전 동구 시장 상인회 건물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열고 창당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_연합뉴스



대의는 어려운 기술(art)이다. 모든 국민이 국정을 논할 수는 없다. 정치는 훈련된 직업 정치인이 해야 한다. 그들이 대변을 넘어 대의(大義)를 지향하고 약자를 옹호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일단 원칙은 그렇다. 그러나 정치인이 국민을 대리하기는커녕 ‘그들만의 나라’를 추구하자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최근 우익 시민사회의 등장으로 NGOs의 가치 지향은 분열되었고, 시민을 대변하는 기능은 약화되었다. 대중은 깨달았다. 이제 아무도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떤 세력도 자기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도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원래부터 불가능했는지 모르지만 대의민주주의는 사라졌다. 직접민주주의, 즉 시위가 의회를 대신하기 시작했고 촛불시위는 그 신호탄이었다. MB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그에게 투표했던 이들이 쏟아져 나와 6개월 이상 거리에서 자신을 직접 대표했다. 다시 요약하면, 대한민국의 대의제는 의회→시민사회→직접민주주의→선망의 정치로까지 타락했다.

대표자(representative)는 우리의 재현(representation)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 선거 포스터에 자주 등장하는 그야말로 “일꾼”이다. 선망의 대상이 일꾼이 된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나 불가능한 일이다. ‘되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되면 된다. 가장 정치인이 되지 말아야 할 타입이 MB와 안철수 같은 인기인이다. 물론 누구나 직업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안 의원은 이직(移職)했으므로 새로운 직장(정치인)에 충실하면 된다. 쉽지 않겠지만 그가 ‘부러운 사람’에서 말 그대로 국민의 몸을 ‘대신(代身)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간철수’나 ‘강(强)철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나는 안 의원이 토크콘서트 등에서 소통과 힐링을 강조할 때 이상했다. 가족 사이에도 소통이 안되는 마당에 국민과 대리인 사이에 소통이 뭐 그리 중요한가. 정치인은 메시아가 아니다. 상호 계약만 정확히 인지하면 된다. 소통이라는 ‘따뜻한’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공정한 대리인이 아니라,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호감 가는 사람을 원한다는 뜻이다. 모두들 외롭기 때문일까.

나 역시 그런가 보다. 현·전직 대통령들 중에서 왠지 MB가 가장 명랑해 보인다. 아니, 행복해 보인다. 우울한 연말, 나는 그를 부러워하고 있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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