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화면에 코를 박은 채 히죽거리기를 얼마나 했을까. 정신을 문득 차려보니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나를 흘끔거리며 쳐다본다. 민망함을 수습해볼 요량으로 쓸데없는 말을 건넸다. “(배우 지창욱이 최근 출연한 드라마) 보세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반색하며 손을 모아 쥐었다. “대~박이죠. 도 보셨어요?” 안 그래도 지창욱에 ‘꽂혀’ 그의 전작을 밤마다 몰아 보고 있던 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몇십분 전만 해도 “약속은 하고 오신 거냐”며 심드렁하게 묻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곰살맞게 변해 있었다. 심지어 서랍을 열고는 초코바까지 내놓았다. 취재원의 사무실에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애매하고 어색하던 상황은 순식간에 십년지기의 만남처럼 화기애애해졌다. 드라마..
정치인들이 정치를 ‘대중문화’로 만들어버린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것에 제일 능했던 이는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배우 출신의 레이건은 자신이 주인공인 영웅담을 대중에게 선전하는 것이 실제 무슨 일이 있었냐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설, 협상, 그리고 정책에 있어서도 할리우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1965)을 시청하느라 정상회담용 자료를 검토하지 못했던 일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할 테면 해봐. 오늘은 나의 날이야”라는 대사에 감동을 받아 의회의 조세 인상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심지어 ‘미국의 위대함’을 설파하기 위해 인용하곤 했던 일화는 (1944)의 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레이건은 자신이 연기했던 ..
1987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야당과 재야단체의 직선제 개헌 요구가 높아지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모든 개헌 논의를 금지하겠다”는 4·13호헌 조치를 발표한다. 그러나 서울대학생 박종철 열사가 정부 발표와 달리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6월항쟁이 본격화된다. 6월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렸고, 26일에는 100여만명이 시위를 벌였다.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는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며 6·29선언을 했다. 야당도 합의하면서 개헌이 이뤄졌지만 그해 12월16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다. 그는 1979년 12·12쿠데타의 주역 중 한명이었다. 당시 상황은 다시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우선 헌법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