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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야당과 재야단체의 직선제 개헌 요구가 높아지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모든 개헌 논의를 금지하겠다”는 4·13호헌 조치를 발표한다. 그러나 서울대학생 박종철 열사가 정부 발표와 달리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6월항쟁이 본격화된다. 6월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렸고, 26일에는 100여만명이 시위를 벌였다.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는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며 6·29선언을 했다. 야당도 합의하면서 개헌이 이뤄졌지만 그해 12월16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다. 그는 1979년 12·12쿠데타의 주역 중 한명이었다.

당시 상황은 다시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우선 헌법까지 바꿨지만 직선제라는 협소한 정치체제의 변화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만들어진 야당의 한계는 당시나 지금이나 반복되고 있음도 새삼 깨닫게 된다.

강원도 원주시 중·고등학생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2016년 11월을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100만개의 촛불이 모이자 시민혁명이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동시에 가야 할 길은 멀고 지난할 수도 있다는 의구심도 싹트고 있다. 가장 큰 장벽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나는 버틸 테니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퇴진운동으로 전열을 다시 가다듬었지만 오락가락하는 야당의 태도도 벽이다. 소위 대선주자들의 이해타산과 백가쟁명식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 광장의 촛불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촛불은 이제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첫번째는 우리가 왜 촛불을 들었는지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샤머니즘’에서 ‘길라임’에 이를 정도로 소설·영화보다 더 픽션 같은 일들이 터지면서 광장의 촛불을 점화시켰다. 그러나 촛불은 이미 타오르고 있었다.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헬조선’으로 내몰린 시민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속에 촛불을 한자루씩 켜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광장에 모여 왜 촛불을 들게 됐는지를 얘기하고 어떤 세상을 함께 만들지에 대해 의견을 모아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야만 촛불의 힘은 기존 정치권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다행히 오는 19일부터는 전국적으로 촛불광장에서 토론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하니 바람직한 일이다.

두번째는 ‘시민불복종’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대통령이 끝까지 버텨보겠다는 상황에서 광장의 촛불이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카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민불복종은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49년 발표한 논문 ‘시민불복종의 의무’에서 도입됐다. 그는 논문을 통해 흑인 노예제를 지원하는 미국 정부에 대항한 납세거부를 지지했다. 그는 “우리는 국민이기에 앞서 인간이어야 한다. 옮음보다 법을 더 존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시민불복종은 이후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에 의해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한국에서는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정통성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부에 대해 시민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시민불복종밖에 없다. 촛불은 시민불복종의 시작일 뿐이다. 대통령의 버티기가 계속된다면 시민은 광장에서 뜻을 모아 모든 형태의 시민불복종을 조직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들의 업무가 특정 집단의 이권에 이용된 것이 분명해진 이상 정상적 업무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은 2016년 11월을 향해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대해 토론할 것’과 ‘시민불복종을 조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대광 전국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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