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태극기집회를 보면서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살아계셨다면 박근혜 일당의 패악과 탄핵정국에 대해 어떤 말을 하셨을까? 아버지는 초급장교로 6·25에 참전했고 작은 부상을 입어 국가유공자가 됐다. 대학 시절과 4공화국 때 ‘정치물’을 좀 먹어 젊어서는 야당과 함께 독재에 맞섰지만 나중엔 JP의 팬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에 대해선 복잡한 애증을 가졌다. 그런 아버지의 최후 순간들에 나는 중대한 인생의 진리를 보았다. 건강을 잃고 나서는, 그리고 죽음이라는 전능자·절대진리 앞에서는 다른 모든 세속의 것들과 비슷하게 정치란 게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 병석의 그는 평생 뜨거운 관심을 기울였던 뉴스나 신문 한 줄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여를 앞둔 대통령 선거에 대한 아무 논평 없이..
경찰이 그제부터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상대로 신변보호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는 단체 회원들이 박영수 특검의 집 앞으로 몰려가 “몽둥이맛을 봐야 한다”고 위협한 데 따른 조치다. 경찰은 앞서 22일부터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헌재 재판관 전원을 대상으로 밀착경호하던 터라 더욱 긴장하고 있다. 그제는 한 20대가 ‘박사모’ 홈페이지에 이 소장대행을 해치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수사가 시작되자 자수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평화적인 촛불집회로 세계의 찬사를 받은 나라에서 최고재판소의 재판관들과 특검이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친박세력의 헌재 재판관과 특검팀에 대한 위협은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그제 탄핵반대 집회에서 “박 대통령이 탄핵되면..
언론 보도와 특검 수사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애먼 시민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설인 지난 28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박사모’ 회원 조모씨가 투신해 사망했다. 조씨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용하는 손태극기 2개를 든 채 몸을 던졌고, 태극기에는 ‘탄핵가결 헌재무효’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박사모 활동 때문에 가족과 불화가 있었다. 유족을 상대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7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는 한 스님이 박 대통령 체포 등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두 사람의 극단적 선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의..
‘간첩이 틀림없어. 평일 아침에 흙 묻은 등산화를 신고, 허름한 배낭을 멨다. 게다가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분명 간첩이야. 저걸 어떻게 신고하지? 가다가 파출소 앞에 차를 세워야겠다.’ 1970년대가 아니었다. 1987년 민주화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86년이었다. 나는 초등학생도 아니었다. 군대까지 다녀온 스물아홉 먹은 멀쩡한(?) 청년, 게다가 버스 운전사였다. 그런데 아침에 내가 모는 삼화교통 333번 버스에, 어릴 적 반공 세뇌 교육으로 배운 그런 간첩 행색의 남자가 탔다. 나는 룸미러로 그자를 훔쳐보면서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파출소에 버스를 대고 얼른 뛰어가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이 와서 조사해 보니 간첩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