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주제에 대해 도전해 보려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건설업자 윤중천은 강간치상과 사기 등 혐의로 각각 구속 기소되었다. 유력 검사와 건설업자 간의 불법 커넥션, 김학의 이외 고위층 남성들의 리스트를 거머쥔 ‘윤중천 리스트’, 호화 별장과 성접대, 2013년 검찰수사와 재수사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 마약류를 먹인 후 성폭력을 했고 불법촬영으로 협박했다는 증언까지, 이른바 별장 성접대 사건에는 한국 사회의 비리와 음험한 권력의 결탁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다. 김학의, 윤중천의 구속 기소는 사건을 공개하고 증언한 피해여성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두 차례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지옥이 꽉 차는 날, 죽은 자들이 땅 위를 걷게 될 것이다.” 좀비 영화 고전인 (1978)의 홍보 문구다. 줄줄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법조계 #미투 가해자 안태근, 연극계 #미투 가해자 이윤택, 그리고 충남도 전 지사 안희정 등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말이다. 강간범들이 이미 지옥을 꽉 채우고 있어서, 저들이 지옥에도 못 가고 여기서 떠도는 건가 싶었다.2018년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와 함께 시작했다. 이는 2019년 체육계 #미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성폭력을 방조하는 구조는 사뭇 강고하고, 가해자들은 여전히 반성을 모르며, 그들을 처벌할 법적이고 문화적인 토대는 아직 미미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 언론은 “미투 피로감”을 들먹이며 마치 성폭력 ..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가 4년간이나 선수를 성폭행한 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놀랍고 참담하다는 탄식만 하기에는 선수들이 처한 인권 상황이 위중하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환호에 가려져 왔던 폭행으로 얼룩진 선수들의 일상은 피해 선수의 용기있는 ‘말하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체육계,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이 사건을 계기로 뼈저린 자성을 하고 두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촘촘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그러려면 먼저 이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조재범이라는 한 개인의 일탈행동으로만 봐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 역시 누군가에게는 보통의 가족, 친구, 동료였을 것이다. 이제 그는 성폭력 피의자로서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쳐 진상규명과 함께 응당한 처벌을 받..
미국의 보스턴글로브가 2002년 탐사보도로 미국을 흔든 적이 있다. 미국 가톨릭 성직자들이 30년에 걸쳐 아동을 성추행하고, 교회는 이를 은폐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그건 놀라운 뉴스였지만, 사실 오래된 일이었다. 지난 1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총장은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300명이 넘는 가톨릭 성직자가 194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 1000명 정도의 아동을 성추행했다. 미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바티칸 서열 3위인 조지 펠 추기경이 지난 26일 아동성범죄 혐의로 모국인 호주 법정에 섰다. 가톨릭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신교 목사의 성범죄도 흔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03년의 일이다. 개신교 신자들이 꼽은 10대 뉴스 가운데 6개가 대형 교회 원로급 목사들의 불륜이었다. 스님이 룸살롱 ..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같은 제목의 기사에 눈길이 끌렸다. 훈훈한 로맨스 이야기인가 싶어 클릭해 몇줄 읽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욕설을 쏟아내고 말았다. 여중생을 성폭행해 임신까지 하게 만든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내용. 법원은 피해자였던 여학생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 했고, 순수한 사랑을 나눴다는 남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에는 무수한 댓글이 줄을 이었고 분노로 들끓었다. 2년 전의 일이었다. 며칠 전 같은 사안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이 확정됐다. 달라진 건 없다. 아니, 통념상 납득되기 힘들거나 상식의 기준을 넘어서는 관계라도, 경우에 따라 위계나 강압에 의한 성폭행일지라도 법률가들이 사용하는 게임의 룰만 잘 파악한다면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스캔들로 촉발된 ‘#미투(Me Too)’ 캠페인에 동참한 여성들의 이름을 보며 다시 한번 실감했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라는 후천적 권력도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선천적 약점을 상쇄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와인스타인에게 성추행당했을 때 귀네스 팰트로는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영화배우였다. 현재 미국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 중 하나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워런조차 대학교수 시절 동료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심지어 네덜란드의 한 상원의원은 정치를 막 시작했을 무렵 장관(!)에게 성추행당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들마저 이럴진대, 하물며 후천적 권력은커녕 선천적 약점에 후천적 약점까지 덤으로 얹힌 대다수 여성들은 더 말해 무엇할까. 성폭력을 당할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