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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꽉 차는 날, 죽은 자들이 땅 위를 걷게 될 것이다.” 

좀비 영화 고전인 <시체들의 새벽>(1978)의 홍보 문구다. 줄줄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법조계 #미투 가해자 안태근, 연극계 #미투 가해자 이윤택, 그리고 충남도 전 지사 안희정 등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말이다. 강간범들이 이미 지옥을 꽉 채우고 있어서, 저들이 지옥에도 못 가고 여기서 떠도는 건가 싶었다.

2018년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와 함께 시작했다. 이는 2019년 체육계 #미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성폭력을 방조하는 구조는 사뭇 강고하고, 가해자들은 여전히 반성을 모르며, 그들을 처벌할 법적이고 문화적인 토대는 아직 미미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 언론은 “미투 피로감”을 들먹이며 마치 성폭력 가해자와 ‘미투 구경꾼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 하지만 피로감이란 오히려 이 “강간의 왕국”과 싸우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미투가 터질 때마다 소란스럽기만 하지 아직 제대로 해결된 것은 없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가야 할 길도 너무 멀다. 그러다 보니 끝나지 않는 마라톤을 뛰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사회가 느끼는 피로감이 있다면, 그건 여성을 계속 피해자의 자리에 머물도록 강요하는 강간문화가 초래한 ‘강간문화 피로감’이다.

“미투 피로감”이란 사실 좀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느끼는 하찮은 감정 같은 것이다. 당신도 좀비물을 보다가 “피곤하게 뭐 저렇게까지 열심히 버티나, 그냥 좀비가 되어 버리면 간단할 텐데” 싶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미투 피로감을 말하는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와 거리감은 딱 저 정도일 뿐이다. 그들을 구경꾼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미투는 이 지옥도에서 도저히 좀비가 될 수 없는 인간들의 싸움이다. 그들은 좀비의 민낯을 보고 썩는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괴로운 시간을 버티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싸우는 사람들 덕분에 계속된다.

그러고 보니 1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 피해자들은 더욱 용감해졌고, 그를 지원하는 동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 싸움을 지지하는 시민의 범위 역시 넓어지고 있다. 우리는 스포츠계 #미투를 보면서 그런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토대는 앞서 “나도 말하겠다”면서 침묵을 깬 사람들 덕분에 쌓여왔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안 전 지사는 같은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이준헌 기자

그렇다면 이 좀비 아포칼립스를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한국 반성폭력 운동이 집중하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성범죄 수사 및 처벌 과정에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최협의설’을 타파하는 것이다.

형법상 강간·추행이 인정되려면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폭행과 협박을 당하고, 그것이 ‘현저히 저항이 곤란한 정도’여야 하며,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 한국 법조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폭행·협박을 최대한 협소하게 해석한다는 의미에서 ‘강간죄에서 폭행 협박에 대한 최협의설’이라고 한다.

안희정의 경우 일반 강간죄(형법 297조)가 아닌 위력에 의한 간음죄(형법 303조)로 기소되었음에도, 1심 재판부는 “위력이 행사되었는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명시적인 위협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졌다. 위력의 의미가 최협의설의 영향 아래에서 해석된 것이다. 따라서 오는 2월1일 안희정 항소심 선고 내용은 최협의설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서조차 피해자가 저항 여부를 증명해야 한다면, 한국의 법조계는 #미투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안희정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 선고를 통해 최협의설에 치우친 성폭력 판단을 극복하는 판례를 남겨야 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판결이 가이드가 되어 “명백한 동의가 없다면 그것은 강간”이라는 “Yes Means Yes 룰”을 바탕으로 하는 ‘비동의 강간 추행죄’ 신설로 나아가야 한다. 판례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손희정 |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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