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의 행동방식이 다양할 수 있는 만큼 ‘피해자라면 취해야 할 행위’를 일반화·유형화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는 강제추행·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모 갤러리 대표 ㄱ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을 깨고 ㄱ씨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한 뒤 법정구속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가 피해자 김지은씨의 피해 전후 행동을 근거로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과 대비된다. ㄱ씨 사건의 1심 재판부는 피해자 ㄴ씨가 추행 후 즉각 항의하지 않았고 ㄱ씨와 헤어진 뒤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을 무죄 근거로 들었다. 항소심 재판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 전문(114쪽)을 읽었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떠올렸다. 법리. ‘문제적 판결’이 나올 때, 법관들은 법리 뒤에 숨는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 부장판사)에 묻는다. 법리에 따라 판단했는가? 재판부는 ‘위력은 존재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고 했다. 형법 303조 1항은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해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를 처벌토록 하고 있다. ‘위력으로써’라 했을 뿐,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한 바 없다. 대법원 판례도 다르지 않다. 위력이 폭행·협박 등 다른 수단을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다면 위력이 아니다. 존재 자체로 약자를 복종시키기에 위력이다. 물리력이 작용했다면 위력간음이 아니라 강간죄로 기..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 사건은 정상적 판단력을 갖춘 성인남녀 사이의 일이고, 저항을 곤란하게 하는 물리적 강제력이 행사된 구체적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페미니스트 사라 아메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인종차별과 성차별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판부가 김지은의 언행을 해석하여 위력 행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으므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증언을 증거 삼아, 재판부는 안희정의 위력 행사를 심판하지 않고 김지은의 피해자다움만 심판했다. 아는 사람들 사이의 성폭력 사건일수록 이미 형성된 관계 때문에 피해 사실에 대해 의심받기 쉽다. 가해자의 변론은 획일적이다. 피해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