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지도자의 숙명 가운데 하나는 매 순간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그 결과가 정치적 자산이 될지, 부채로 남을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장은 자산인 것처럼 보이는 선택이 부채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부담감을 용기와 의지로 돌파한 사람들만이 성공한 정치인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김무성 당 대표에게 주목하는 것도 그가 과연 집권당의 지도자다운 인물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행보는 시종여일하다. 친박근혜계 최고위원들의 사퇴 요구에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한 그는 “밤사이 심경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김무성 대표는 어제 “유 원내대표 스스로 결단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를 모양새 좋게 퇴진시키자는 것으로, 친박의 입장도 고..
새누리당 내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유승민 원내대표를 자리에서 내쫓기 위해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친박 핵심 의원들은 주말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모여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서 의원에게 일임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오늘 최고위원회의가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집단 사퇴를 통한 유 원내대표 압박 무대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친박 의원들의 유 원내대표 축출 운동은 용납되기 어려운 부적절한 행동이자 명분 없는 행위다. 의원 다수에 의해 뽑힌 원내대표를 대통령이 비판했다고 하루아침에 쫓아내는 것은 민주적 절차와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자신들이 뽑아놓은 원내대표를 쫓아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잘못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유 원내대표의 그간 행동..
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다른 이들이 다 미친 것인가? 어제 대통령의 일상으로 복귀 명령에 따라 오랜만에 애국하는 심정으로 극장에 들렀다. 메르스 여파로 극장은 한산했다. 텅 빈 객석에서 를 보고 나왔지만 계속해서 첫 장면에서의 주인공 독백이 자꾸만 머리에 맴돈다. 최근 마치 ‘닥터 둠’처럼 가는 곳마다 다가오는 대붕괴를 언급하면서 급진적 전환을 외치고 다니는 나도 주인공과 같은 독백을 하곤 한다. 영화에서의 황폐한 디스토피아 풍경처럼 대한민국의 대붕괴가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단단해보였던 기존 압축성장 시대의 경제, 정치, 사회의 모든 틀이, 심지어 지구 자체가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메르스, 저성장, 기후변화 등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기존 문명의 작동불가능을 시사한다. 영화는 ..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을 이끄는 좌표와 같다. 강제보다 설득에 의존하는 민주정치에서 말의 힘은 특히나 중요하다. 정치에서 적절한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따라서 좋은 말, 공정한 말을 쓰는 것이 정치인에게는 거의 의무에 가까운 행위 규범이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규범성에 소홀한 정치인의 말은 시민의 생각을 가두는 감옥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 양극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부적절한 정치 언어에서 비롯된 바 크다. 여야 사이에서 혹은 같은 당의 계파 사이에서 그저 편을 나눠 ‘하게 되어 있는 말’을 반복하는 것, 마치 자신들만 옳음을 독점하고 있는 듯 내세우는 것, 상대를 마주 보고 차이를 좁히기 위해 대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