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 나직이 불러보면 시골 초등학교 동창생 가시내 이름 같기도 하고 다시 정금, 중얼거리면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박수근 그림의 바탕이 되는 회백색의 질감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한 무른 바위의 거친 표면을 아주 닮았다. 어릴 적 고향 뒷동산에서 뛰놀 때 부드럽게 휘어진 능선을 돌아들면 굵은 소금 같은 알갱이로 부서지는 다정한 바위들. 그 가까이에 주로 자라는 나무가 있었다. 정금나무였다. 소 먹이러 갔을 때 후두둑 깜보랏빛으로 익은 열매는 늘 우리들 차지. 정금나무의 키는 내 머리통에 수박 하나를 얹은 것과 어금버금해서 겨드랑이에서 팔을 쭉 빼면 딱 따먹기 좋은 위치였다. 어느 땐 익기를 기다리지 못해 초록의 띵띵한 열매를 훑기도 했다. 깨물면 퍼지는 시금털털한 맛도 얼굴 한번 찡그리고 나면 뒷맛이..
권위 있는 연구자에 따르면 김수영 시인은 자유가 아니라 꽃의 시인이라고 해야 마땅하다고 한다. 시인이 남긴 작품을 조사해 보면 꽃이란 시어를 무려 127회나 부렸다는 것. ‘꽃’ 하나로 ‘꽃의 시인’의 지위를 누렸던 김춘수 시인이 듣는다면 뭐라고 하실까. 이제 시의 업(業)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 고인(故人)의 반열에 드신 분들이니 그게 무슨 대수랴 싶기도 하다. 꽃이 홀연 자취를 감춘 계절. 가로수 줄기 끝에선 꽃잎 대신 매미소리가 펄, 펄, 펄 떨어져 내린다. 시인들은 이 수상한 시절을 어찌 견디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여름에 발표하는 시를 살피면 그 속내의 한 자락이라도 혹 알 수 있지 않을까. 종로도서관에서 계간지를 일별해 보았다. 내 수준을 함부로 벗어날 순 없고 그저 작품 속의 구체적인 나무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