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태는 법치주의하에서 산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어둠 속에서 보지 못했지만 바로 우리 옆에 계속 있어 왔던 절벽을 보여주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절벽 너머로 떨어져버렸다. 이들 중에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해외시장에서 활약하다가 일거에 도산한 건실한 수백개의 수출기업들도 있었다(키코 판결). 심지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의중에 맞게 재판일정이 조작되어 80여년 전의 지옥 같은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 한 푼 못 받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도 있었다. 해법은 무엇일까? 이번 사법농단은 제왕적 대법원장이 고위법관들에 대한 장악력 확대를 위해 상고법원이라는 새 기구를 만들려고 저질렀다. 이미 2017년 초 폭로되었던 판사블랙리스트도 일선 판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였다. 해법의 초점은 제왕..
2017년 3월 6일 경향신문 1면.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저지하라고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를 압박하다가 해당 판사가 위법한 지시라며 거부하자 일선 법원으로 인사 조치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과정에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등 대법원 고위층이 직접 개입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묵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양승태 사법농단’의 서막을 알린 기사였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됐다. 경향신문에 그의 실명이 등장한 지 1년 7개월여 만이다. 한겨레의 ‘최순실 실명 보도’로 박근혜 국정농단이 수면 위에 떠오른 시점이 2016년 9월 2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건 2017년 3월 31일이다.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인용을 거쳐 감옥에 가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