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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6일 경향신문 1면.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저지하라고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를 압박하다가 해당 판사가 위법한 지시라며 거부하자 일선 법원으로 인사 조치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과정에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등 대법원 고위층이 직접 개입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묵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양승태 사법농단’의 서막을 알린 기사였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됐다. 경향신문에 그의 실명이 등장한 지 1년 7개월여 만이다. 한겨레의 ‘최순실 실명 보도’로 박근혜 국정농단이 수면 위에 떠오른 시점이 2016년 9월 2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건 2017년 3월 31일이다.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인용을 거쳐 감옥에 가는 데 6개월 걸렸다. 전직 차관급 법관을 구치소 보내는 데는 세 배 이상 소요됐다. 법원의 조직보호 논리와 본능은 그만큼 강고하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5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임 전 차장의 ‘공범’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조만간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설 것이다. 구속 기소든 불구속 기소든 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한국 사법은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까? 양 전 대법원장의 책임을 묻는 일은 필요조건일 수 있으되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음 사례들을 보라.

#1. “사실관계는 인정한다. 하지만 징계사유는 될지언정 형사처벌 받을 사안은 아니다.” 임 전 차장과 변호인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펼친 방어논리다. 통상 구속 기로에 놓인 피의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된다. 잘못했다며 싹싹 빌고, 눈물을 보이는 일도 다반사다. 임 전 차장 측은 달랐다. 검찰을 향해 “재판의 구조를 이해 못한다”며 면박을 줬다고 한다.

#2. “밤샘조사 결과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말자.”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밤샘조사를 받고 귀가한 직후 법원 내부망과 페이스북에 이런 취지의 글을 올렸다. 밤샘조사는 피의자 인권 차원에서 지적할 만한 사안이다. 강 부장판사가 과거에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러나 굳이 사법농단 수사 중에 재론해야 했을까. 조사받은 임 전 차장은 법원 동료이자 고교·대학 동문 관계이기도 하다.

#3.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것임을 밝힌다. 대법관들 모두가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되었다.” 지난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입장문을 냈다. 사법농단의 핵심 피의자인 고영한 당시 대법관도 포함됐다. 그들은 ‘근거 없음’을 뒷받침하는 어떤 근거도 내놓지 않았다. ‘우리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선포했다. 법률가가 아니라 제사장(祭司長) 같았다.

고위 법관들의 법철학과 정의감은 선택적이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들만의 울타리에 둘러싸인 사법 패밀리를 ‘불멸의 신성(神聖)가족’이라 명명한 바 있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펴낸 <사법개혁을 생각한다>에서 법원의 무오류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법원 판결은 대부분 공정하고 합리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판결도 있다. 하지만 분쟁은 법원에서 최종 해결되어야 하므로 모든 판결에 강제력이 부여된다. (강제력이 부여된다는 이유로) 법관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법원의 무오류주의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법원은 오판을 범할 수 있는 평범한 판사들로 구성돼 있고, 과거사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실제 오판을 양산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노비 출신 미군 유진 초이는 조선 최고 명문가 애기씨 고애신에게 물었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법원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법관들에게 물을 수 있겠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법원에는 누가 있는 거요? 시민은 있는 거요? 약자는 있는 거요?” 추가로 묻고 싶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법원에 오류는 없는 거요?” 그들은 머뭇거릴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법원은 ‘법관의, 법관에 의한, 법관을 위한’ 법원이다. 오류 따위는 없는 청정한 법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을 구치소에 보낸다고 사법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수치심을 모르는 ‘리틀 양승태’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이 더 이상 법의 성채 속에 또아리 틀고 앉아 주권자를 소외시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자. 주권자가 사법행정에 보다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면밀하게 감시할 길은 없는가? 대법원장·대법관·법원장을 임명하는 과정에 시민 의사를 보다 명확하게 반영할 길은 없는가?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당장 판사를 선거로 선출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법관·법원공무원·시민 대표 등으로 사법행정 감시기구를 구성하는 일은 가능하다. 재판 측면에서는 배심제·참심제 확대 등을 통해 시민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다.

사법농단을 부끄러워하고 ‘좋은 재판’을 꿈꾸는 법관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 그들만이라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법관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틀릴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비판을 경청하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겠습니다.”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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