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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당 고조는 스물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중 둘째 아들인 이세민이 피비린내 나는 냉혹한 권력 다툼 끝에 고조를 무력화시키고 왕위에 오른 일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이세민도 열네 번째 아우인 이원궤만큼은 유독 총애하였다. 이원궤는 깊은 학식과 바른 행실로 당대에 높이 인정받았다. 자신의 형제 가운데 누가 가장 훌륭한지를 묻는 태종 이세민의 질문에 재상 위징은 “오왕(이원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늘 저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라고 답했다.

이원궤는 선비 유현평과 격의 없이 지냈다. 어떤 이가 유현평에게 이원궤의 장점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장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의아해하는 상대에게 유현평은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에게 단점이 있어야 장점이 드러나는 법이지요. 그분은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 제가 무엇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단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모든 면이 완벽해서 특정한 장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만 두각을 드러내면 각광받는 오늘날, 장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개성 없는 인간형이 과연 바람직할까? 조선 시대 문인 조귀명은 유현평의 말이 천하의 지론이라고 하면서 사람의 기질과 연결하여 논의를 발전시켰다. 천성적으로 굳센 사람이 있고 부드러운 사람이 있다. 굳센 기질은 과감함과 엄격함으로 드러나고 부드러운 기질은 따뜻함과 은혜로움으로 드러난다. 문제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엄격함을 넘어설 때 엄격한 사람이라고 평하고, 당연한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 때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한다는 데에 있다. 이는 어느 경우든 기질의 치우침을 바로잡지 못한 결과이므로, 관점에 따라 장점이 곧 단점이 되고 말 뿐이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저 책잡힐 일 없이 중간만 가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과감해야 할 때는 더없이 과감해야 하고, 따뜻해야 할 때는 더없이 따뜻해야 한다. 극단의 엄격함이 중용일 때도 있고 한없는 은혜가 온당한 경우도 있다. 관건은 그 판단의 기준이 자신의 기질이나 사람들의 평판에 있는가, 사심 없는 원칙과 명분에 있는가다. 눈앞의 칭찬이나 비판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그것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 버릴 것이다. 결국 남는 건, 파르르 떨리는 나침반 바늘처럼 공의를 지향하는 진실한 마음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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