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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별로 사용하지 않아 낯설어진 우리말 어휘 중 하나로 새 이름 ‘고니’가 있다. 대신 ‘백조’라는 어휘가 주로 사용되는데 이는 본디 ‘하얀 새’의 통칭이었고, 한자 곡(鵠)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고니다. 백조 혹은 ‘스완(swan)’이라고 부를 때의 우아함이 고니에서는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1980년대 유행한 노래 제목 이후로는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다. 고니는 다른 새에 비해 몸집이 크고 빛깔이 깨끗해서 예로부터 상서로운 새로 여겨졌다. 

그런데 한(漢)나라 왕충(王充)은 사람들이 고니를 귀하게 여기고 닭을 천하게 여기는 까닭이 단지 고니는 멀리 있고 닭은 가까이 있기 때문일 뿐이라고 했다. 옛날의 공자나 묵자만 귀한 줄 알고 동시대 인물이 아무리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도 하찮게 여기는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끌어온 이야기다. ‘귀이천목(貴耳賤目)’이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멀리서 전해들은 것은 대단하게 여기고 가까이에서 본 것은 함부로 대한다는 뜻이다. 유독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 것은 예수만이 아니다. 공자 역시 동네에서는 함부로 불렸다. 우(虞)나라의 군주는 궁지기라는 인물이 올린 적절한 간언에 대해 그가 자신과 어릴 적 편하게 어울린 사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다가 나라를 잃고 말았다.

낯익고 친근한 대상을 무시하는 경향은 동서고금에 늘 있어 왔지만, 요즘은 매체의 놀라운 발달로 인해 물리적 거리마저 거의 사라져 버렸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가 공유되고 성역이 허물어지는 것은 혁명적인 변화다. 그 순기능과 잠재력은 대단하지만, 그런 변화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아직 미미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가 무시되고 신중한 접근이 가볍게 희화화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공자는 안영을 두고 사람을 사귀는 진정한 도를 지녔다고 칭찬했다. 친하게 지낸 시간이 오래 되어도 상대를 존중할 줄 안다는 이유에서다. 존중의 태도가 필요하다. 강요되는 권위의 허상을 깨는 일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정보에 들인 공과 섬세한 적용의 능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한다면 우리는 더 소중한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애초에 닭과 고니 사이에 우열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낯익고 흔해 보이는 대상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태도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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