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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공격을 당한 조나라 혜문왕은 백전노장 염파 대신 조괄에게 병권을 일임하는 패착을 범한다. 재상 인상여가 “조괄은 병법을 책으로만 공부했다”며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조괄은 전장의 현실을 무시하고 책에서 배운 이론에만 입각해서 군대를 운용하다가 대패하여, 40만의 조나라 군사가 생매장당하고 말았다. 현장 경험이 없는 ‘책상물림’ 조괄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책상물림. 책상 앞에 앉아 글만 읽을 줄 알았지 세상물정에는 어두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21세기 대명천지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묵은 한문책만 뒤적이고 있으니, 책상물림도 이런 책상물림이 없다. 그나마 조괄이 공부한 것은 실용학문인 병법이었지만, 나의 공부는 실용과는 거리가 먼 인문학, 그것도 옛 사람들의 인문학이다. 전쟁 같은 생사의 현장을 경험해 본 적도, 진흙탕싸움의 정치판을 맛본 적도 없는 백면서생이 얼마나 물정 모르는 이야기를 하게 될지 불안하다.


하지만 ‘세상일을 잘 모르니까’ 오히려 말할 수 있다. 현실의 어느 한 축에 깊숙이 들어가 있을수록 눈앞의 현실이 생각을 가득 메운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만이 현실에 가장 충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야기는 결국 현실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바둑돌 잡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수가 훈수 둘 때는 눈에 들어오듯이, 때로는 바깥에서 멋모르고 던지는 한마디에서 설 자리와 갈 방향을 확인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용감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 서생들이 국정 현안에 대해 그리도 과감하게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은, 경서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경서의 무동을 탄 말은 왕조차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경서는 더 이상 보편적 권위를 지니지 못하지만, 고전이라는 거인의 무동은 여전히 유용하다.

조괄이 실패한 이유는 책에서 본 대로만 하면 되리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더구나 이를 공명심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지 않고 사심의 개입을 경계할 일이다. 덧붙여, 책상물림의 이 무모한 시도에 작은 바람이 있다면,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신 이런 공부에 언젠가 이르는 것이다. “공부는 책상 위에 서는 것입니다. 더 넓고 먼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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