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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는 국가의 잘못에서 생겨난다. 국가의 잘못이 싹트기 시작하면 하늘은 자연 재해로 경고한다. 그래도 변화할 줄 모르면 괴이한 변고로 놀라게 한다. 그래도 두려워할 줄 모르면 결국 하늘의 재앙이 이르게 된다. 지혜로운 군주라면 충신의 간언도 즐겨 받아들이거늘, 하늘의 경고를 받고 무시할 수 있겠는가?”(동중서, <춘추번로>)

말도 안된다. 재해와 변고가 하늘의 경고라며 국가의 책임을 묻다니! 그런데 이런 논리에 따라 가뭄, 홍수, 천체의 이례적 운행, 혹은 전염병의 창궐이 있을 때마다 왕은 하늘에 잘못을 고하며 눈물을 흘리고 신하들은 하늘의 목소리로 왕에게 경고하는 풍경이 신라시대부터 끊임없이 있어 왔다. 일식과 월식이 변고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현상으로 이해될 만큼 천문학이 진전됐고, 전염병의 원인과 처방에 대한 지식도 축적돼갔다. 그런데도 왕은 참회하고 신하는 질책하는 일이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왜일까? 재이가 무조건 실정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통치자로서 이를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하늘의 경고는 무언의 재해와 변고로 나타날 뿐이므로 왕은 그때마다 진의를 알기 위해 구언(바른말을 구함)의 명을 내려 많은 이들의 지혜를 모았다. 여기에는 원칙이 있었다. 이때만은 신하가 어떤 지적을 해도 그 말로 인한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기회로 왕에 대한 날 선 비판과 개선책들을 강하게 제시했다. 이 역시 점차 관습화되어가긴 했지만, 어쨌든 왕은 재이가 있을 때 자신에 대한 비판을 공식적으로 구했고, 신하들에게는 이것이 바른 언로의 마지막 보루였다.

재해와 변고에 대처하는 길은 여전히 두 가지다. 예측과 대비, 사후조처를 철저히 하는 일, 그리고 국가의 역할에 잘못이 없는지 지혜를 구하는 일이다. 가뭄을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는 기술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의 의학 수준과 행정 능력이면 국제적으로 경고된 전염병에 대한 사전 관리와 대응 조치를 충분히 시행할 수 있었다. 통치자가 눈물로 탄식하며 그저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더구나 이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건강한 비판마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하늘의 경고를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더 큰 재앙이 이르게 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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