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1990년도만 해도 전체 가구의 9.0%에 불과했던 1인 가구의 비중이 작년에는 25.9%로 증가했으며, 2025년에는 세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일 것이라고 한다.
이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고령화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2012년 기준 12%였던 고령화율은 2025년이면 2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두 예측 시나리오를 겹쳐보면, 고도성장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4인 핵가족의 모델은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주거, 출산, 양육 문제로 결혼을 포기하거나 거부한 청년 세대뿐만 아니라, 10년 뒤면 저소득의 노년층이 되어 있을 그들의 부모 세대, 즉 베이비붐 세대까지 1인 가구의 대열에 가세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 큰 반전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2020년대 중반이면, 40만명대의 출생인구를 기록했던 저출산 1세대가 청년으로 성장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시점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들의 부모인 1970년대생 대다수는 2000년대 초·중반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자기 힘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없었던 첫 세대, 그러니까 4인 핵가족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산 증여나 은행의 담보 대출, 혹은 이도저도 아니면 부부 맞벌이가 필수적이었던 첫 세대였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자면, 저출산 1세대의 상당수는 부모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핵가족 모델의 문제점을 집단적으로 체험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성장 시대에 성장한 그들이 굳이 고도성장기의 가족 모델을 선택할 이유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1인 가구의 급증이 누구에게나 우울한 소식인 것은 아니다. 노후 대비를 위해 원룸이나 오피스텔, 소형 아파트에 투자했던 중산층이라면 확실히 쾌재를 부를 만한 뉴스일 것이며, 중산층의 4인 가족에 초점을 맞춰왔던 내구소비재 제조업체라면 ‘상품의 소형화’를 통해 시장 전략의 다변화를 꾀할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반응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류 언론이다. 그들은 발 빠른 움직임으로 1인 가구를 겨냥한 창업 시장을 소개하면서,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 중산층의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들에게 ‘1인 가구의 증가’는 시장의 행위자가 각자 알아서 대처해야 할 트렌드의 변화로 간주될 뿐, 사회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해야 할 정치적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이들의 시점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 ‘강 건너 불’을 구경하며 자신의 손익을 따져보는 관찰자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치 선정은 나름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면, ‘1인 가구의 증가’가 ‘저출산’과 ‘고령화’와 보조를 맞춰 더디게 진행되지만 거스를 수는 없는 거대한 변환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나면, 개인적 차원에서 대처 방안을 모색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 변화가 ‘나’의 문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안전지대로 대피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 안전지대는 연령대에 따라서는 죽음 이후의 종교적 세계일 수도 있고, 자산 증여와 교육 투자를 통해 계층 재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특정 지역일 수도 있으며, 수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동경하던 한국 바깥의 선진 세계일 수도 있다. 만일 여기에 ‘시대정신’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몇 년 전 어느 유명 연예인의 유행어였던 “나만 아니면 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만 아니면 돼”의 복불복 게임에서 탈락한 이들, 더 나아가 그런 게임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이 대면하게 될 미래란 어떤 모습일까?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의 가능성을 경험해 보지 못한 개개인의 절망과 분노, 원망과 증오가 계층·성·세대·지역의 경계선을 따라 폭력적인 형태로 분출되더라도 그리 이상할 것 같지는 않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지난 칼럼===== > 별별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가을, 우리 같이 걸어요 (0) | 2014.10.26 |
---|---|
노원역 사거리의 추억 (0) | 2014.10.19 |
성역 없는 진상규명, 진상 없는 성역규명 (0) | 2014.10.05 |
이제는 없는 꿈을 위하여 (0) | 2014.09.28 |
그 어른들의 측은지심 (0) | 2014.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