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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웃었다. 웃음은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니, 그들에게 감사해야겠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야기다.
우선 김우룡 전 이사장.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재철 MBC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 까이고 매도 맞고 해서 MBC내 ‘좌빨’을 척결했다”고 털어놨다. 이 자폭성 발언으로 그는 실업자가 되었다. 다음은 최시중 위원장. 여기자포럼에 참석했다가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기보다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 딸 둘을 (모 여대) 가정대에 보냈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이듬해 시집을 보냈다”고 말했다. 여성 비하 논란이 일자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든 맏딸이 한나라당에 서울시의원 공천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중잣대 논란까지 보태졌다.
<경향신문 DB>
며칠 사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터져나온 두 ‘소극(笑劇)’이 차라리 반갑다. 이명박 정권의 핵심부에 있다는 인사들-이 중 한 사람은 ‘대통령의 멘토(조언자)’로 불린다-의 발언이 현 정권의 적나라한 실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이들이 사용한 어휘에 주목한다.
여권 인사들의 ‘설화’ 릴레이
일단 ‘조인트’부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조인트(를) 까다’가 관용구로 올라 있다. 풀이는 ‘(속되게) 구둣발로 정강이뼈를 걷어차다’이며, 용례로는 ‘상사가 명령을 따르지 않는 신병에게 군홧발로 조인트를 깠다’는 표현이 실려 있다. 사전이 공인하듯, 조인트를 까거나 까였다는 말은 권위주의적 병영국가 시절의 잔재다. 40대 이상 남성들은 이 관용구에서 씁쓸한 정겨움마저 느낄지 모르겠다. 고교와 대학 시절 교련 시간에, 그리고 군대에서 많이 듣던 용어 아닌가. 김 전 이사장은 김재철 사장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얼마든지 다른 표현을 쓸 수도 있었다. 큰집에 불려가 ‘한 소리’ 들었다든지…. 하지만 무심코 떠올린 ‘조인트’를 통해 그는 단박에 자신과, 자신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정권의 정체성을 고백했다. 마초적이고, 퇴행적이고, 군사문화적인.
‘현모양처’론도 다르지 않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교복 입던 시절엔 장래 희망으로 현모양처를 꼽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여성들을 앞에 놓고 현모양처 운운하면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최 위원장이 말하는 현모양처란 신사임당이 아니라 안방마님을 뜻하는데, 지금은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생계유지를 위해서든 일하지 않고서는 살기 힘든 시대다. 최 위원장은 두 딸을 모 여대 가정대에 보냈고 졸업한 이듬해 시집 보냈다고 했다. 이 대학 가정대 졸업생들은 자랑스러운 모교를 ‘결혼을 위한 간판’으로 전락시킨 최 위원장에게 명예훼손 소송이라도 내야 하지 않을까. 최 위원장의 딸조차 “아버지가 (발언을) 잘못한 것 같다. 여기자포럼 가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었는데 죄송하다”(시사IN 인터뷰)고 했다. 최 위원장의 발언 역시 현 정권의 가부장적이고 과거회귀적인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낙태 단속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발상과 최 위원장의 현모양처론은 동전의 앞뒤에 다름 아니다.
‘설화(舌禍)’ 릴레이는 끝이 없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아프리카에는 밀림과 자연만 있다. 그게 관광명소냐. 무식한 흑인들만 뛰어다니는 곳일 뿐”이라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뒤늦게 사과했지만, 정권의 시대착오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는 한 몫 했다.
여권에 설화가 잇따르자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인 정두언 의원은 “선거 때는 언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젊은 층을 짜증나게 하는 언행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정권의 퇴행적 실체 드러내
그러나 언행이란 주의를 기울인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다. 인간과 그 인간이 속한 집단의 교양과 품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작가 공지영은 독일 체류 중 느낀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토론을 할 때 좌파는 타이도 매지 않은 차림으로, 때로는 담배까지 피워가며 자유분방하게 이야기하지만, 우파는 정장 차림으로 철학자들의 명언을 인용하며 점잖게 말한다.’ 우리도 품위 있는 우파를 가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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