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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수능’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에서 영어·국어 영역의 만점자 비율이 높아진 게 발단이다. 교육당국도 쉬운 수능 기조를 강조하고 있다. 찬성하는 목소리는 “어려운 수능은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학교를 입시학원화해 학생들의 잠재력과 고등사고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이라는 논점을 펴고 있다. 반대로 쉬운 수능은 한 문제라도 틀리면 안된다는 불안을 가중시키고, 수능 변별력 상실과 대학별 고사로 보충하려는 절박감으로 이어져 사교육 풍선 효과를 키울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 ‘한 번의 수능’ 학생 역량 평가 못해… 학생부 활용 늘려야

9월 수능 모의고사의 만점자 비율이 대폭 상승한 것을 계기로 쉬운 수능에 대한 논란이 부각되고 있다. 국어는 A형과 B형 모두 만점을 받아야 1등급이 될 수 있었다. 영어도 만점자가 3.7%로 여전히 높은 비율이다. 이러한 쉬운 수능 전략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하여 교육부가 선택한 대안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쉬운 수능이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는가이다.

정부의 발표대로 현재의 쉬운 수능은 오로지 사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사교육비 외에 더욱 고려되어야 할 것은 학생들이 불필요한 경쟁에서 벗어나 도전의식을 갖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영어 절대평가 방침을 모든 과목으로 확대하면서 동시에 쉬운 수능으로 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으로 학교교육을 정상화하는 길이다.

어려운 수능은 학교를 더욱 입시학원화한다. 학교는 학생의 지적, 정서적, 신체적 발달을 동시에 도모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지닌다. 그런데 어려운 수능으로 인해 학교는 공장에서 벽돌을 찍어내듯 획일화된 지식 기술자의 양산에 몰두하게 된다. 이로 인해 EBS 교재가 교과서를 대체하고 이미 유형화된 문제에 대한 대처 능력을 기르는 연습만을 거듭하게 된다. 어려운 수능에 의한 변별력은 일부 대학의 요구이며 수능 점수로만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은 학교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대학이 수능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다양한 방식의 선발에 따른 학생 능력을 존중하는 가치를 실현하기보다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공교육의 황폐화를 더욱 조장할 뿐이다. 따라서 대학은 입학전형 과정에서 쉬운 수능과 함께 고등학교의 생활기록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단 한 번의 어려운 수능으로는 학생들의 고등사고력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1994년에 시작한 수능시험 문제는 모두 유형화되었고 학생들은 그것만 익히면 된다. EBS 교재를 포함한 대부분의 수능 문제집은 유형화된 문제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또한 시험의 난도를 높이는 방법은 정상적인 사고력 확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수를 줄이고 교묘하게 위장된 함정을 피하는 기술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비교육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려운 수능은 학생의 태도와 인성 그리고 잠재력을 측정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다. 학생의 역량은 지적역량뿐만이 아니라 바른 태도와 인성을 바탕으로 하는 융합적, 사회적 역량을 포함한다. 이를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어려운 수능으로는 불가능하며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교과이수 과정과 각종 학교 활동을 평가하고 기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는 학생의 평가권을 온전히 교사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교사가 평가한 학교생활기록부를 철저히 신뢰하는 대입전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듯 쉬운 수능을 지향하는 수능의 절대평가와 자격고사화를 통해 교사의 온전한 평가권을 실현하고 공교육을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초·중등 교육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인식한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이해당사자는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수능 시험을 주요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로부터 학교는 입시학원화하고 일부 대학의 합격 숫자가 명문학교의 척도인 양 서열을 매긴다. 그러나 교육은 모든 사람의 탁월성을 발현하도록 하고 동시에 사회적 책임감을 스스로 성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쉬운 수능과 더불어 학교생활기록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대입전형이 정착됨으로써 달성되어야 한다. 이렇게 할때 학생은 즐겁고 교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공교육 친화적인 환경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성권 |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대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0여일 앞둔 22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고3수험생들이 부모님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촬영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 변별력 상실하면 사교육 더 의존… 대입제도 근본 개혁을

40여일 앞으로 수능이 다가왔는데 ‘물 수능’으로 대표되는 난이도 찬반 논란 자체가 안타깝다. 수능 준비에 지친 학생들, 마음 졸이며 뒷바라지해온 학부모와 교사 입장에서 볼 때 물 수능 논란 자체가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6월 모의평가에서는 영어가, 9월은 국어가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이 됐던 쉬운 시험은 11월 수능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가 쉬운 수능 기조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쉬운 수능은 변별력 상실을 의미한다. 한 번의 실수로 수능등급이 하락한다는 불안감을 증폭하고, 대학별 고사로 보충하려는 절박감은 논술 등 사교육 의존의 원인이 된다. 또한 많은 동점자 양산으로 정시에서는 눈치작전도 예상된다. 축적된 학교 입시자료가 유명무실화, 진학지도에 어려움도 뒤따를 것이다. 교사의 진학지도에 대한 신뢰보다 사교육 입시 컨설팅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정시에서는 고액 사교육 컨설팅이 기승을 부려 사교육 시장이 더욱 확대될 우려마저 있다. 우선 실력보다 운이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당일 컨디션이 나빠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오지 않은 학생은 납득을 하지 않고 재수를 선택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쉬운 수능은 수험생의 학습 부담을 줄여주며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입시철만 되면 “난이도가 등급별로 정상분포 곡선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빗나가고 예측 불가능한 널뛰기식 수능으로 수험생의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 사실 수능 응시생이 60만명이 넘는 상황에서 정상분포 곡선을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수능난이도 조정을 통한 대증적 처방보다는 예측과 준비가 가능하도록 수능, 내신, 논술, 면접, 입학사정관제도의 유기적이고 상호보완을 통해 근본적인 대입제도의 혁신이 요구된다.

첫째, 수능은 고등사고력 측정시험에서 탈피하여 고교 수업 내용 기반의 국가기초학력평가로의 성격규정이 필요하다. 기초기본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공교육의 목표다. 따라서 전국 단위의 표준화 시험인 수능은 기초학력을 총괄평가하는 성격의 시험이 돼야 한다.

둘째, 내신은 범교과적 창의력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로 격상돼야 한다. 단순한 사실적 지식이 아닌, 비판적, 해석적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학교와 교사에게 평가의 자율권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생이 이수한 고교 교육과정과 대학의 전공별 입학전형을 연계하여 능력과 적성, 소질에 따라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학생 희망 전공 관련 진로맞춤형 내신 반영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셋째, 논술은 공교육 체제에서 대비 가능한 수준으로 고난이도의 논술을 지양하되, 궁극적으로 폐기돼야 한다. 한국교총이 2012년 교원 2087명, 국회의원 14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대입제도 개편과 관련하여 입시에서 가장 비중 있게 반영되어야 하는 것으로 수능(35.3%), 고교내신(31.5%), 인성·특기적성(28.2%)으로 나타난 반면 ‘논술 및 면접’이 중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3.6%에 불과한 데서 이를 입증한다.

넷째, 면접은 전공지식 중심보다는 인성 등 전인적 능력적성 중심 평가로 실시해야 한다. 전공에 맞는 활동과 능력도 검증해야겠지만 입학사정관은 학생의 인․적성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면접은 전공 교수와 입학사정관의 역할 분담 및 연계를 통해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평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어려운 수능도, 쉬운 수능도 능사가 아니다. 대입제도는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 기초기본교육과 창의적 능력, 인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예측 가능하게 혁신을 해야 한다. 올바른 대입제도 개선은 교육 정상화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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