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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뉴턴, 로크, 파스칼, 스피노자, 칸트, 라이프니츠, 쇼펜하우어, 니체, 키에르케고르, 비트겐슈타인 등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모두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며 ‘의도된 고독’의 길을 걸었기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철학자들입니다.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교수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사월의책)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적시하고는 “이들의 위대함은 결혼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기,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의도된 고독인 ‘흰 고독’의 순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노 교수는 “리얼리티가 없기에 일장춘몽에 불과한 ‘화려한 싱글’과 판타지가 없이 고독사에 떨고 있는 ‘독거노인’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 서 있는 다양한 혼자만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경남 창원시 성산아트홀 앞 낙엽거리를 걷는 한 중년 남성 (출처 :연합뉴스)
이 시대 사람들이 모두 철학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닐진대 1인 가구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40%에 달합니다. 서울시에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1980년 8만2477가구에서 2010년 85만4606가구로 30년 만에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2012년 기준 1인 가구는 453만 가구로 전체의 25.3%입니다.
1인 가구 증가의 원인으로 개인의 부상, 여성의 지위향상, 도시의 성장, 통신기술의 발달, 생활 주기의 확장 등을 제시한 노 교수는 “1인 가구의 증가는 흑사병처럼 퍼져 나가는 독신 풍조의 확산을 의미하지도, 인구 감소로 인한 사회 몰락의 징조도 아니”며 “이타주의의 몰락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가정중심성이 약화되는 징후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노 교수는 미혼, 비혼, 만혼, 이혼 등의 옆에다 독립, 자율, 권능, 홀로서기 등의 긍정성을 강조한 단어를 연결합니다.
노 교수가 지적한 바대로 우리 사회는 개인이 삶의 양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확대되면서 혼자 사는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 노처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요구하는 보편적인 미래의 문제”입니다.
<완벽한 싱글>(김용섭, 부키)은 “혼자 살든 결혼해서 살든 단순히 혼자라는 의미를 넘어 스스로 사회적, 경제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자유를 지향하는 이들”입니다. 결혼은 하되 완벽한 싱글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부부를 ‘코시스’(CoSis=Couple+Single)로 부른다네요. ‘완벽한 싱글’은 결혼을 해도 싱글 라이프의 독립성이란 핵심 요소를 유지하며, 외벌이일지라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수입과 지출을 나눠 ‘경제적 싱글’로 사는 등 자녀와 배우자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혼자는 두렵습니다. 더구나 불안정한 고용이 증가하고 장기불황이 진행되면서 타인과 함께 사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셰어하우스>(구보타 히로유키, 퍼블리싱컴퍼니클)는 다수가 한집에 살면서 침실 같은 개인적인 공간은 따로 사용하고, 거실과 화장실, 주방 등은 함께 사용하며, 방세와 전기요금 같은 생활비를 함께 부담하는 생활방식입니다.
구보타 히로유키는 “‘자유’를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을 인정받는 것이라 한다면, ‘자립’을 정도껏 타인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면, ‘친밀감’을 함께 생활하면서 상대에게 느끼는 경애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것들은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 함께 사는 생활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과의 삶은 혼자 사는 것보다, 가족과 사는 것보다, 훨씬 자유롭고 자립할 수 있고, 친밀한 것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셰어 생활이 필요한 이유를 ‘자유’와 ‘자립’, ‘친밀감’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젊은이들은 원룸과 같은 ‘나만의 공간’에서 독립해 사는 것을 즐겼지만 이제는 ‘나 혼자’보다는 ‘공유’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건물 외벽에 암벽등반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텐트먼트 셰어하우스’, 베이비시터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동 육아와 서로 육아 품앗이를 하는 ‘싱글맘 전용 셰어하우스’, 연주자나 음악가를 위해 방음시설을 갖춘 ‘음악가 셰어하우스’ 등 취미와 라이프스타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특화된 ‘셰어하우스’도 늘어나고 있답니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각자의 생활공간을 유지하며 정기모임과 공동식사, 그룹 활동 같은 자율적인 소통을 통해 고립에 대한 불안감, 가사와 육아 문제에 대한 걱정 등을 해소하는 <컬렉티브하우스>(고야베 이쿠코 외, 퍼블리싱컴퍼니클)도 ‘제3의 주거’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 교수는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삶은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람들이 네트워크(연대)로 이어진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완벽한 싱글’의 부부나 ‘셰어하우스’와 ‘컬렉티브하우스’는 그런 연대의 모습이 아닐까요? 김용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싱글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개인은 우주공간이라는 퍼즐에서 ‘나’라는 존재의 위치부터 찾아야 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곧 ‘가족’이라는 단어가 사전에서 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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