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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계의 뜨거운 키워드가 ‘북유럽’이라고 합니다. 먼저 교육 하면 핀란드입니다. 교육계에 핀란드 열풍을 불러온 계기가 된 책은 2008년 국내에 소개된 후쿠타 세이지의 <핀란드 교육의 성공>(북스힐)입니다. 핀란드 교육의 무엇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을까요? 후쿠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개인의 능력 차이는 물론 인정한다. 그러나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경제적 배경의 차이는 어떻게 해서든 없애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회가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사회가 바로 핀란드다.”


복지도 북유럽입니다. 올해 9월, 유엔이 156개 국가를 대상으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해 발표한 ‘2013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덴마크가 1위, 노르웨이가 2위, 네덜란드가 4위, 스웨덴이 5위, 핀란드가 7위로 북유럽이 상위를 휩쓸었습니다. 이러니 문화, 라이프스타일, 육아, 여행, 교육, 인테리어, 가구 등도 북유럽이 ‘방방’ 뜨고 있습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국내에서 그래도 웬만큼 팔렸다는 북유럽 소설로는 덴마크 작가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마음산책)이 처음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북유럽 소설의 인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인구 900만의 나라 스웨덴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은 벌써 제목만큼이나 대단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민작가로 일컬어지는 헤르만 코흐의 <디너>(은행나무)와 노르웨이 국민작가 요 뇌스베의 <스노우맨>(비채)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북유럽 소설입니다. 세 소설 모두 흡인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출처 :경향DB)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젊은 시절에 프랑코, 트루먼, 마오쩌둥, 스탈린, 김일성과 김정일 등을 만나 격동의 현대사를 바꿨다고 주장하는 알란 칼손이 자신의 100세 축하 파티가 열리기 한 시간 전에 양로원을 탈출한 뒤에 이어지는 대책 없는 도피행각을 그린 소설입니다. 탈출한 그가 처음 다다른 버스터미널에서 한 갱단의 돈가방을 우연찮게 손에 넣게 됨으로써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2막이 시작됩니다.


폭약 전문가로 원자탄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경험이 있는 알란은 99세에 닭을 괴롭히는 여우를 잡으려고 폭탄을 설치했다가 집을 송두리째 날려버립니다. 사건이 나자 한 시간도 안되어 현장에 나타난 사회복지사 헨리크 쇠데르는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노인 알란을 시 예산으로 시내 중심가의 호텔에 잡아두었다가 일주일 만에 말름셰핑 양로원으로 데려다 줍니다. 흡연과 음주를 금지하고 지켜야 할 각종 규칙이 많아 결국 알란이 탈출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사회적 시스템이 부럽지 않나요?


차기 수상(총리)이 유력한 정치인 형과 전직 역사교사인 동생의 부부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 서양의 정찬요리를 먹는 순서, 즉 아페리티프,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 소화제, 팁의 순서로 전개되는 <디너>는 처음에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며 다소 느슨하게 전개됩니다. 그러나 두 부부의 아들이자 열다섯 살짜리 동갑내기 사촌 형제가 벌인 노숙자 살인사건의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이 TV는 물론 인터넷에까지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소설은 격랑 속으로 빠져듭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들 외에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들 형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네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한국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속의 어머니 이상의 어머니가 이 소설에 등장합니다. 소설의 화자인 동생은 외국인들이 네덜란드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렘브란트나 빈센트 반 고흐 같은 화가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유일한 네덜란드 사람은 안네 프랭크”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화가가 반 고흐이고, 가장 많이 팔린 일기가 <안네의 일기>인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닌 것 같지 않나요?


일러스트 : 김상민


<스노우맨>은 오슬로 경찰청 최고의 형사인 해리 홀레 반장이 노르웨이 첫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야기입니다. 첫눈이 올 때마다 아이가 있는 여자들이 살해되거나 사라집니다. 현장에는 어김없이 집 안을 들여다보는 눈사람이 등장합니다. 스칸디나비아의 냉혹한 겨울만큼이나 범인 ‘스노우맨’의 차가운 살인이 계속되고 경찰이 추정한 범인이 자꾸 바뀌는 바람에 독자는 미혹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해리는 타고난 워커홀릭에다 알코올홀릭입니다. 범인은 심각한 정신질환자입니다. 소설이 파국에 이른 지점에서 범인은 해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같은 일을 했다는 사실. 병균과 싸우는 일. 하지만 너와 내가 싸우는 병균은 절대 박멸되지 않아. 우리가 거두는 모든 승리는 일시적이지. 따라서 우리 일생의 과업은 싸움 그 자체야.”


<스노우맨>은 선과 악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 겪은 우연한 아픔을 평생 짊어지게 된 인간들이 가해자나 피해자를 가릴 것 없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냉혹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해리 반장이 범인과 함께 사선을 넘다가 정신을 잃은 후 깨어나자마자 “전 여자친구의 목을 뎅강 자르려고 했던” 범인의 생사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에서 우리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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