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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무를 만나 이름을 모르면 옹알이하듯 버벅거릴 수밖에 없기에 입이 탄다. 이름에 집착하기에 벌어지는 부작용일 테다.
손잡이가 문은 아니지만 손잡이가 있어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듯, 꽃에 속하는 건 아니지만 이름으로 꽃을 부를 수밖에 없다. 꽃 이름 하나 안다고 그 꽃에게 가닿는 게 절대 아니다. 하지만 꽃의 나라로 입국하려 할 때, 저 이름을 여권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제 광복절 특집으로 방송된 <우리 들꽃의 독립>이라는 프로그램을 착잡하고 각별한 느낌으로 또 보았다. “전국의 식물들을 채집하고 채록하는 것들은 그 시대 학자들의 신념이고 저항이고 그분들만의 독립운동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이유미) 우리의 좀 복잡한 심정과는 달리 자고로 이미 어엿하게 독립하여 자생하는 들꽃들. 모든 기념일은 시간의 강물에서 각주구검에 불과할 테지만 그래도 기록하지 않으면 생각은 휘발유처럼 증발해 버리고 만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이름 중 그래도 한 번이라도 직접 본 것들을 적는다. 붉은 열매 입에 넣고 굴리듯 다섯 번 낭송하며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최근 산으로 들지 못한 심사를 잠시 달래보느니.
금강초롱꽃 눈측백 산가막살나무 흰인가목 금마타리 산앵도나무 털진달래 애기나리(이상 설악산) 섬개야광나무 섬시호 섬현삼 섬기린초 섬남성 섬초롱꽃 울릉국화 울릉장구채 섬괴불나무 섬노루귀 섬쥐똥나무 섬바디 말오줌나무 삼나무 섬잣나무 섬벚나무 너도밤나무(이상 울릉도) 미나리아재비 젓가락나물 개구리자리 개구리갓 은꿩의다리 꿩의다리 연잎꿩의다리 홀아비바람꽃 잔털벗나무 꿩의바람꽃 회리바람꽃 올벗나무 개벚지나무 개살구나무(이상 조선식물향명집, 1937, 조선박물연구회).
흰 꽃 이름 중얼거린다고 혀가 하얗게 변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기름진 입안이 조금 경건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한라산 백록담과 더불어 다음의 꽃들. 동강할미꽃 홍도원추리 제주달구지풀 부산꼬리풀 한라개승마 좀개미취 해오라비난초 나도승마 독미나리.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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