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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제공
하루를 건너는 게 참 아슬아슬하다. 뉴스도 인터넷의 바다에서 돛단배 타고 출렁출렁 돌아다니며 챙겨본다. 홍수처럼 넘실대는 제목 중의 하나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합천에서 떠내려간 소…” 기록적인 장마 뒤끝이기에 무슨 사정인 줄 쉽게 짐작이 갔다. 클릭하는 그 짧은 시간, 말줄임표에 숨어 있는 소의 운명에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다행이다, 합천의 소가 80㎞ 떨어진 밀양에서 무사히 발견되었단다!
합천은 내 고향 거창과 지척이다. 초등학교 3학년, 버스 타고 부산으로 떠날 때 합천과 밀양은 징검다리처럼 거치는 동네였다. 소의 행로난에 내 어린 시절의 부산행과 겹치면서 시골에서 소먹이하던 시절이 소환되었다. 어느 날 느닷없는 소나기에 송아지를 잃어버렸다. 다음날 어미소의 낮은 울음소리를 앞장세우고 찾아나설 때, 무덤 근처 덤불에서 뛰어나오는 송아지를 만나 고함 질렀던 기억.
합천에서 떠내려간 소는 하나가 아니었다. 또 한 소는 창원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연을 읽고 구조된 소의 사진을 보았다. 소는 물이라면 이제 진저리가 난다는 듯 바닥이 쩍쩍 갈라진 낙동강 어느 둔치를 딛고 은사시나무(라고 짐작이 되는) 그늘 아래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그간 얼마나 놀라고 황망했을까. 홀쭉해진 등을 보는데 오래전 접한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을 제외한 어떤 짐승도 제 등의 온 면적을 바닥에 깔고 편안한 잠을 이루는 경우가 드문 듯하다.”(이성복, 타오르는 물) 그렇다, 네 발로 걷는 짐승들의 등은 모두 산등성이처럼 뾰족하다. 아무리 피곤해도 벌렁 드러누울 수가 없다. 소는 앉은자리에서 자고, 잠든 자리에서 그냥 일어나야 한다. 고달파라, 합천 소. 부은 발등이라도 쭈욱 뻗고 따뜻하게 등을 지질 수가 없겠구나. 하늘 한번 제대로 못 보겠구나.
고향 근처발(發) 저 뉴스를 그냥 소비할 수는 없었다. 아차, 하면 놓치는 것들이 많다. 그것은 시간의 강물에서 속절없이 떠내려가는 것들. 그런 와중에 시범이라도 보이는 듯 내 머릿속 흙탕물을 헤치고 나오는 소 한 마리!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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