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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이부망천’

opinionX 2018. 6. 12. 13:50

나는 서울에서 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 생활을 할 때까지 서울특별시민으로 살았다. 비록 변두리를 전전하며 살았지만, 거의 27년을 서울에서 교육, 편리한 대중교통, 인접한 문화시설 등등을 누렸다. 평생 살 것이라 생각했던 서울살이를 접은 것은 두 번째 삶을 인천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1996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인천의 한 시민문화재단에서 계간지 편집장으로 일하며 22년째 살고 있다. 내 삶의 절반을 인천에서 사는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태어나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렇다. 정태옥 전 자유한국당 대변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는 2010~2013년 인천시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그를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다. 1986년 행정고시로 공무원이 되었고, 서초구와 서울시를 거쳐 인천에서 일했고, 다시 안전행정부 지역발전정책관, 지방행정정책관을 거쳐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을 역임하다가 지난 20대 국회에서 대구 북구갑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공무원 시절 그의 전문성도, 정치적 뿌리도 지역에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살고 망하면 인천 산다)’ 발언을 처음 들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천 시민들은 이런 식의 비하 이외에도 ‘수도 서울의 관문’ 따위의 다양한 비하발언을 접해왔다. 어떤 곳에 사는 사람이 남의 도시로 들어가는 대문이 되고 싶겠는가? 그가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비록 인천에서 공직자 생활은 했지만, 마음속에 인천과 시민에 대한 애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30년째 교사생활을 하는 어떤 분은 얼마 전 서울 목동 소재 사립고등학교 교사에게 “우리 학교가 명문으로 뜨고 있는 건 인천에서 온 애들 때문이에요. 우리 학교에서 SKY 가는 애들은 그 애들이에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인천은 해마다 성적이 우수한 중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이주한다. 이른바 인천 토박이 중에도 원도심에 살다가 신도심으로 갔다가 부천 상동으로, 다시 서울 목동으로 가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 결과 목동의 아파트 값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수도권은 물론 서울과 먼 타시·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다만 그들 대부분은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과정에서 ‘인(in) 서울’하게 되는 것에 비해 수도권 인근 지역은 고교 시절부터 ‘인 서울’이 진행된다. 자녀교육에 관심이 있고, 동원할 자금력이 있는 사람은 부동산으로 재미를 볼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의 재테크도 할 수 있어서 자녀의 학력도 대물림될 것이다. 이를 계급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으나 지역 차원에서 보면 지역의 게토화와 공동화(空洞化) 현상이다.

서울은 주변의 인재와 자원을 빨아들이며 끝없이 팽창하는 블랙홀이다.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고, 폐기물을 지방으로 전가한다. 그 결과 서울을 제외한 주변 지역은 사헬벨트(Sahel belt)처럼 말라 죽는다.

1991년 지방의회,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어느덧 30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지방분권과 자치는 여전히 머나먼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 상황이기에 표를 달라고 요구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입에서 저와 같은 지역비하 발언이 거침없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돈은 지역에서 벌고 자식은 서울로 보내면서도 끝없이 지역 사랑, 지역 불균형 발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외치는 사람들은 부동산계급사회 혜택과 서울중심주의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솎아내는 몫은 물론 주권자인 시민에게 있다.

고향을 떠나 대처에서 서울 시민 행세하다가 특정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연고지랍시고 내려와 “우리가 남이냐”를 외친다. 똥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일이 반복되는 한, 지역은 서울의 식민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공천 준 사람에게만 충성하기 때문이다. 이들만 막아도 지금보다 지역의 삶은 한결 나아질 것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했다. 내가 사는 곳의 주인이 되면 그곳이 어디라도 참된 삶의 터전이 되리라는 의미이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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