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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성실 사회

opinionX 2018. 6. 15. 15:54

“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2016년 11월6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자를 노려보며 쏘아붙인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7년 3월21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구한 표정으로 내뱉는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8년 2월26일 검찰청에 들어서던 안태근 전 검사장이 무심한 표정으로 내던진다.

“성실히 조사를 받겠습니다.” 2018년 5월2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던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포토라인에 서서 읊조린다.

한국 사회에 때아닌 ‘성실인’이 넘쳐나고 있다. 성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정성스럽고 참됨’, 한국어기초사전에는 ‘태도나 행동이 진실하고 정성스러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근데 성실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가 막힌다. 하나같이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요리조리 저지르며 권력, 금력, 위력을 마구잡이로 휘둘러왔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성실을 다짐하고 나서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줄 보다 근원적인 문화 코드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이들이 활용하는 성실 코드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뉴스에 나오는 성실인을 볼 때마다 의문을 품곤 했는데, 지방대생 부모를 연구하다가 불현듯 성실 코드의 ‘한 기원’을 발견했다.

내가 연구한 지방대생 부모는 공교롭게도 차남과 딸이 대부분이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가부장의 권위에 짓눌려 살아왔다. 가부장과는 상호 공감을 바탕으로 한 쌍방향적 의사소통을 해보지 못했다. 차남은 형처럼 서울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다 된통 혼났고, 딸은 대학 보내달라고 졸랐다가 ‘지지배’가 쓰잘 데 없는 소리 한다며 지청구를 들었다. 울분이 솟구쳤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실하게 고된 노동을 하는 가부장을 보고 마음을 다스렸다. 게다가 무능한 가부장 탓에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집안 살림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가모장을 보고 연민을 품었다.

자신이 존중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 상황에 적당히 관여하며 설렁설렁 살거나, 상황이 요구하는 정해진 규칙만을 따라 성실히 사는 것. 어릴 때는 반항심으로 ‘적당’히 살았지만, 부모에 대한 연민이 생긴 후부터는 ‘성실’히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부모처럼 되지는 않으리라. 경제 능력을 키워 진정한 가부장의 길을 가리라. 경제 능력이 있는 가부장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리라. 차남과 딸 모두 가족 밖 세상과 담쌓고 주어진 ‘가족인’의 삶의 행로를 따라 성실하게 살아간다.

온 가족의 성실을 발판 삼아 서울로 진출한 장남.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통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다. 기고만장 살다 어느 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그제야 떠나온 고향의 성실 코드를 떠올린다. 아예 죽으라는 법은 없지.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 봐봐. 가진 게 변변찮은데도 엄청 성실히 살았잖아. 하나씩 실타래가 풀려 지금은 나름 잘 살잖아. 나도 성실히 조사를 받다보면 살길이 열릴 거야.

현재 한국 사회에는 성실 코드에 기대어 위기를 벗어나려는 ‘예비 성실인’이 가득하다. 실제로 최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유명 인사들은 하나같이 성실 코드에 의지한다. 그만큼 성실 코드가 지방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서 문화적 호소력이 크다는 거다. ‘성실’이란 무엇인가?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묻지 않고 그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사는 것. 그게 개인에게 ‘자율’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강제하는 조직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방책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모르려는 의지’로 넋 놓고 살다보면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일삼는 조직 사회의 우두머리에게 ‘직싸게’ 당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이제 우리 모두 잠시라도 멈춰 서서, ‘가치론적 질문’으로 자신의 삶을 톺아볼 때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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