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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꼴찌라는 출생률과 함께 한국 사회의 어두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 1위 지표는 자살률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두 가지를 생각해보면, 한국인들은 참으로 기괴하고 모순적인 사회를 견디며 살아간다. (또는 그래서 죽는다.) 일면 더없이 화려하고 선도적이며 경제·군사·문화 영역에서 이미 선진국이지만, 그 금자탑은 지속 불가능성·불평등·부패 위에 서 있다. 그런 이중성은 한국인의 집단심성에도 반영돼 있을 것이다. ‘국뽕’은 여전한 헬조선의 현실에 눈감기 위한 일종의 자위적 심리의 발현이거나, 지배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나’의 우울과 비관, 타인을 향한 혐오와 억울함도 같이 늘 파도처럼 넘실댄다.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20·30대 여성의 자살률은 20대에서 25.5%, 30대에서 9.3%로 크게 높아졌다. 코로나19 사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어 어느 언론은 ‘조용한 학살’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20·30대 여성들이 이 사회를 살아갈 만한 괜찮은 데로 보지 않는다면, 인구절벽의 타개책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한편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19년 사이 청소년 자살·자해 관련 상담 건수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2018년에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라는 한 인디밴드의 노래가 ‘자살송’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유행했다. 이 노래에는 “엄마 나는 밥만 먹는 식충/ 엄마 미안해요 물론 아빠도 미안해/ 이 와중에 핸드폰비 때문에 텅장됐네/ 나는 스물두 살 삼수생에 공익 새끼/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 나는 쓰레기 새끼에 대가린 멍청해 바보라고 해” 같은 가사가 포함돼 있다. 가사에 나타난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와 20대 청년의 자아상은 어떠한가?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한 사람 또는 한 커플이 인생 전체를 생각하며 하는 판단에 의한 일이겠다. 부모로부터 어떤 경험을 물려받았으며, 이웃과 친구들의 삶이 어떠한지? 이는 양육 부담 및 교육비 문제와 함께, 축적된 과거의 관계와 ‘나’와 아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투사되는 일이다. ‘세계관’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좋은 삶’에 대한 기대의 문제다. 이에 관련된 문화와 마음이 바뀌지 않고 출생률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06년부터 15년간 정부가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 투입한 예산은 무려 225조원, 2020년만도 40조2000억원에 달했다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인구절벽’에 대한 그간의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어 천문학적인 돈이 변죽을 울리는 데 들어가고 말았거나, 관료들이나 정치권이 생각하는 것보다 문제가 훨씬 깊고 넓어 저 정도 재정투입으로도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구절벽’의 원인은 아마도 경제, 정치, 교육, 문화 등 전 영역에 걸치고 또 겹쳐있을 텐데, 이 사회는 소위 촛불혁명에도, ‘촛불정부’에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사회’란 가족, 학교, 직장, 마을이다. 그 각각이 변해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줄세우기 경쟁과 잔인성을 배우는 교육, 고용 불안과 차별이 횡행하는 고용시장을 그대로 둔 채 몇십만원 받는 ‘출산장려책’이 통할까?

그런데 예를 들어,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정책 담론을 보면 이 정부의 일각은 영 무능한 것은 아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청년들의 변화한 노동가치관을 못 따라 가는 노동시장”이 저출생을 심화한다며 “한부모 지원” “비혼 출산 양육정책” 등을 추진하겠다 했다. 최근 여가부도 비혼이나 동거 등 기존 법과 정책에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아 각종 복지제도에서 소외된 가구를 포용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했다. 한국식 혼인과 가족의 개념이 변하고, 그래서 남녀 모두가 지금보다 더 평등하고 자유로워질 때 결혼·출산·육아의 의미도 다른 것이 될 가능성이 크기에 의미 있다.

그러나 이 정부가 걸어온 길을 볼 때 이런 정책들은 단지 ‘추진’에 그치고 말 것 같다. 야당이 반대해서, 대중(?)이 잘 몰라서, 종교계가 반대해서, 기재부의 관료주의 때문에 등등. 아마 수십개의 현실적 장애와 수백개의 핑계가 있을 것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4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묻고 싶어진다. 사회와 문화는 어떻게 변합니까? 깨어있는 시민의 투표로? 정밀하게 잘 설계된 정책으로? 투철한 리더와 도덕적이고 유능한 엘리트층의 힘으로? 시민운동과 촛불 같은 대중의 행동으로? 180석 정도의 압도적인 의석으로? 이 중 2022년 대한민국 국민이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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