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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무엇일까? 거창한 이념이나 명분을 이루기 위해 사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왕 태어난 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세계행복보고서가 나왔다. 매년 3월20일 ‘세계 행복의날’,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한다. 핀란드와 덴마크가 엎치락뒤치락 1위를 하는 그 보고서다. 행복을 점수로 환산하고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사실 행복보고서는 정책결정자를 위한 지표 자료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보고서는 행복을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소득과 기대수명 같은 객관적 지표에 사회적 지원, 살면서 누리는 선택의 자유, 기부 경험, 청렴도 등 해당 국가의 구성원이 느끼는 다양한 사회적 환경을 포함해 삶의 만족도를 분석한다. 나라별로 전년 대비 구성원의 행복이 증가했는지, 무엇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 정책을 펴는 데 활용하라고 만드는 것이니 개인보다는 정책 결정자에게 중요한 자료다.
근래 들어 다양한 연구가 개인의 행복이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환경오염, 부정부패, 불평등, 사회분열, 서로에 대한 신뢰 등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여러 요소가 일상에서 누리는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세계행복보고서는 각 사회의 성적표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당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상태가 0이고 가장 행복한 상태가 10이라면 0에서 10까지의 수치로 환산할 때 당신은 몇 점 행복하십니까?”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사용하는 질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행복지수는 얼마인지 잠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의 대한민국 행복지수가 5.8이니 그보다 높으면 평균보다 나은 것이고 그보다 낮으면 힘든 한 해였구나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자.
처음으로 순위를 발표한 2013년 이래 대한민국의 행복은 내리막길이다. 행복지수 6.3, 조사대상국 중 41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다. 이후 한국의 행복지수는 뚝 떨어져 5.8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순위도 47위(2015년)→58위(2016년)로 내려온 후 50위권에서 머물다 2020년 61위, 올해는 62위로 한 계단 더 내려왔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의 파고에서 한국은 그나마 잘 대응했기 때문에 순위가 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뜻밖의 결과였다.
세계행복보고서의 올해 주제는 코로나19다. 도시 봉쇄를 했든 자율에 맡겼든 간에 감염병의 확산을 막고 사망률을 낮게 유지한 나라의 경우 경제적 피해가 덜하고 사회지표도 개선되었다. 이상한 점은 그렇다고 행복이 정비례로 증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타이완, 아이슬란드 등 코로나19에 잘 대응한 나라의 경우 행복지수가 소폭 상승했거나 유지되었다. 중국은 행복지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순위도 여덟 계단이나 오른 반면 대한민국은 지수와 순위 모두 떨어졌다. 한편 평균을 훨씬 웃도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기록한 스웨덴·벨기에의 경우 행복지수에 별 변화가 없고 네덜란드·스페인·일본은 상승하기까지 했다. 영국과 미국은 소폭 하락했다.
다 같이 가난하면 배 아플 일이 없다더니, 코로나19는 해당 사회에 속한 모두에게 똑같이 닥친 위기여서인지 나라 전체를 놓고 볼 때 상대적 행복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사회 구성원의 행복을 좌우하는 요인은 따로 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복한 나라의 공통적 특징은 높은 신뢰였다. “정부와 동료 시민을 믿는다” “힘들 때 의지할 존재가 있다”고 답한 사회일수록 견고한 행복을 유지했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자연재해, 과거 금융위기 때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의 경우 행복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회적 신뢰가 지탱하는 행복은 개인 단위에도 적용돼 실직하거나 병에 걸려도, 갑작스러운 사고에 휘말려도 잠시 행복이 주춤할 뿐 회복이 빨랐다. 누군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 위기 상황에서 정부나 이웃 등 사회의 지원을 받는 경험이 축적되면 위기가 닥쳐도 사회 전체의 행복은 오히려 증가한다.
GDP가 늘어나고, BTS가 상을 타고,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해도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속마음. “공무원이 투기를 하는데 정부를 어떻게 믿어?” “각자도생이야. 아무도 믿지마.” 가진 것은 많으나 불행한 우리 사회의 숙제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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