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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거주하는 사람 입장에서 뉴스를 보노라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서울만 사람 사는 동네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이번에 태풍 솔릭이 지나갔는데, 하필이면 그날 이사를 하게 되어 태풍 경로에 온 신경이 쏠렸다. 다행히 수도권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적지 않은 재산과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뉴스에서 집중하는 것은 태풍이 수도권을 비껴가서 다행이란 것뿐이다.

2014년 제1회 대회 때부터 인천에서 열리고 있는 인천평화창작가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오고 있다. 가요제 심사를 맡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주최 측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가요제 심사를 맡긴 것은 아마도 지역대표성과 더불어 평화라는 주제가 지닌 무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천평화창작가요제는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하는 등 서해와 인천 지역의 평화와 시민의 안전이 직접적으로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지역의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화의 노래를 찾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자발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창작가요제이다.

이 가요제 수상자들은 2014년 인천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 폐회식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고, 조직위원회에서 음반을 제작해 발표하고 공연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첫 행사는 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시 정권이 보수정당으로 바뀌면서 지원이 끊기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한 해를 거르고 현재까지 시민단체의 힘만으로 어렵게 끌어오고 있다. 위로는 대학부터 아래로는 작은 풀뿌리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정부 지원만 바라보고 있는 시대에 스스로의 힘으로 작은 행사나마 정성스럽게 치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천평화창작가요제 조직위원회의 젊은 활동가들은 활동비를 아끼고 줄여가며 상금을 마련하고, 음향시설을 대여해 직접 설치하는 등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전쟁과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노래는 많아도 누구나 공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평화 노래는 많지 않은 현실이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입소문을 타고 해마다 참가팀이 늘어나 올해는 156개 팀이 참여해 세상에 없었던 평화의 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올해 들려온 소식에 모두가 상심하고 가슴아파했다.

통일부에서 주최하는 2018 유니뮤직레이스가 ‘평화를 노래하다(평화를 염원하는 내용의 대중음악 창작곡)’라는 같은 주제의 창작가요제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인천평화창작가요제 조직위가 만든 참가 신청서나 작성안내 등 관련 서류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현행법에서 행사기획, 문서 등이 명확하게 ‘저작물‘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사안에 따라 따져봐야겠지만, 국가기관인 통일부에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내용이나 형식은 물론 문서 양식까지 도용했다는 것은 지역의 문화현실이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노력하고 있는 문화운동가들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대기업의 골목상권 죽이기와 무엇이 다른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기관의 공신력과 파급력을 생각할 때, 일반 시민들은 누가 표절했고, 도용했는지에 대해 오해할 수도 있다.

풀뿌리민주주의나 지방분권이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역이 소외되지 않는 것이다. 지방에 산다고 우습게 보거나 천대받지 않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모든 일을 할 수 없기에 시민의 참여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이들을 제대로 지원하고, 대접하지는 못할 판에 공들여 일군 것마저 빼앗아간다면 누가 나서서 그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지역문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서울에선 흔하고 넘치는 것들도 지역에선 귀하기 이를 데 없을 때가 많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한다. 일단 싹이라도 틔워야, 꽃이라도 피워봐야 그것이 큰지 작은지, 예쁜지 못생겼는지 알아볼 거 아닌가.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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