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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적인 것에 대해 애써 외면했다.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정당에서 일했던 경력이 잠시 덮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덮어 둔다고 덮어지는 것도 아닐진대, 2016년 ‘공공의창’이라는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를 만들면서 행여, 과거활동이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크다보니, ‘난 아닌 척’ 벗어나려 했다.

최근 국회의원 특수활동비를 없애라는 국민 목소리가 높았고, 국회는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근데 그 결정이 최선이었을까. 국회와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마저도 제도적 하자나 사회적 파장이 큰 문제가 발생할 때면, 개선이나 보완보다는 중단이나 폐지로 결론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선택은 여론에 순응하고 가장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론에 밀려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일 수 있다. 예상 밖으로 이러한 결정의 피해자는 대부분 국민이다. 물론 국회는 특수활동비 외에도 전체예산을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집행해야 한다. 반면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곳이며, 여느 기관처럼 일을 잘하기 위해선 투자가 필요한 곳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낮은 출산율, 높은 자살률과 고령화지수. 가계부채는 늘고 고용지표는 악화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능력, 행정능력, 정치능력 중 정치능력이 가장 미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정치능력이 미약한 이유는 서구에 비해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겠으나, 우리의 정치시스템이 미약해서다. 낡은 정치시스템으로는 경제시스템과 사회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없다. 국회의원 정수의 부족 또는 지역구 일보다 나랏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부족이 낡은 정치시스템 오작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30년간 국민여론이 바라는 정치개혁의 방향은 언제나 슬림화였다. 애초에 작게 만들어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여긴 탓이다. 여기엔 언론도 크게 목소리를 보탰다. 정치는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한 만큼의 정상적인 체격을 필요로 한다. 슬림화된 정치가 뒷북을 치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 역시 국민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한국사정에서 국회는 국회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정당이 주도하는데, 현재 다수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요즘 민주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경선이 한창이다. 이번 주말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된다. 그래서 실무적 경험을 토대로 ‘좋은 정치개혁을 위한’ 5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의원총회 투표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빅 마우스에 의한 당론결정을 줄여야 한다. 의원총회 결정이 당론으로서 민주적 권위를 확보하고 당내분란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전자투표기를 활용하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기록되어야 한다. 둘째, ‘당론심의위원회’가 필요하다. 당론이 다수의견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동시에 당헌이 추구하는 가치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당론심의과정에서 국민, 당원, 전문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도 종합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셋째, ‘합의쟁점승인제도’의 시행이다. 다른 당의 정책일지라도 가치와 정책방향이 일치하는 것이 있다면, 조건 없이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여야정쟁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해 국민이 손해 보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넷째, ‘중앙당과 원내의 운영을 이원화’하는 방안이다. 국회운영은 국회의원 중심의 원내가 역할을 다하고, 중앙당은 전국의 당원관리 및 선거준비에 매진하되 국회의원이 관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회활동이 보다 안정되고, 당원은 국회의원을 견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설득위원회’를 제안한다. 단기적으로는 국민이 손해를 보는 결정 같지만,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결정에 대해 국민과 적극 소통하는 채널을 확보하는 일이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은 정책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 자리인 만큼, 해당 국회의원에겐 무거운 멍에가 될 수 있다. 나의 생각과 다른 여론에 대처하는 방법엔 반드시 단기처방과 장기처방이 동반되어야 한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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