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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테 쿠아이시베리스 엑스트라(Ne te quaesiveris extra).’ 이 라틴어 문구를 번역하면 “당신과 상관없는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마십시오!”이다. 19세기 미국 사상가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1841년에 <자립>이라는 에세이를 썼다. <자립>은 미국의 정신적인 ‘독립선언문’이다. 미국은 유럽이 독점해왔던 과학, 예술, 철학 전통을 떠나 스스로 자립하려 시도하였다.

우리는 흔히 ‘인간은 무엇인가?’ 혹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중요한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질문을 탐구할 때, 과거라는 전통에 도움을 청한다. 과거의 인물들이 정교하게 장식된 분묘(墳墓) 속에 남긴 이야기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한다. 이 분묘에는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글과 그들의 사상을 숭배하는 학파들의 이론과 창시자를 신격화한 종파의 교리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에머슨은 그것을 ‘엑스트라’라고 말한다. ‘엑스트라’는 파기해도 되는 ‘나하고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위대한 철학가들이나 종교 창시자들의 위대함은 당대 보통 사람들이 숭배하는 과거나 ‘엑스트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게으른 생각인 관습과 편리한 생각인 편견을 넘어선 ‘새로운 길’을 거침없이 제시한다. 우리가 철학이나 종교, 혹은 과거 문화나 문명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반짝이는 천재성을 훔쳐보고, 우리 자신도 직접 신(神)과 대면하고 우리 자신들의 별을 만들기 위해서다. 남들이 전달해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적용할 때, 항상 편견과 왜곡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당신은 혼자의 힘으로 인생에서 추구할 그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까? 당신이 그 무엇을 발견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견해나 소문과 같은 엑스트라에 의지하지 말고, 당신 스스로 찾았습니까? 우리가 수많은 책을 읽고 세계 여행을 했다고 우리의 식견이 넓어집니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리만의 우주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응시하면, 그 안에 나일강과 유프라테스강, 에베레스트산과 옐로스톤과 같은 심산유곡이 있다. 그 우주는 어떻게 생겼나? 그 우주는 우리 주위에서 우리의 관찰을 기다리는 자연, 특히 하늘의 별, 산, 강, 나무, 시냇가, 고양이, 아이의 얼굴,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남들이 다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우리만의 산과 강을 찾아 인내를 가지고 관찰해야 하지 않을까. 위대한 사상들에 빛을 비추었던 태양과 달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여명을 비춘다. 우리 예배의 대상은 우리가 발견한 우주와 그 작동원리가 되어야 한다.

수메르인들은 이라크 남부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를 기원전 3300년경 발견하였다.

이들은 그림글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였고 ‘도시’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그 행정 문서를 기록하였다. 수메르인들은 우주의 작동원리, 자연의 순환을 관찰하며 감탄하고 쐐기문자로 표시하였다. 수메르인들은 그 원칙을 ‘별’을 그려 표시했고 ‘딩길(dingir)’로 발음했다. ‘딩길’이란 단어는 ‘우주의 작동원리’ ‘신성성’ ‘신’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의 별을 아무도 없는 사막의 칠흑과 같은 밤하늘에서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이 별은 우리 곁에 항상 있지만, 인식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자신이 추구해야 할 자신만의 별은 인내를 가지고 관찰할 때 조심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며, 당혹스럽고 흉측한 괴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괴물은 알고 보면 바로 자신이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괴물과 같은 또 다른 ‘우리’는 내면의 소리를 통해 우리와 소통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은 바로 이 내면의 소리를 들은 자다. 1930년대 등장한 양자역학은 원자의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자리를 잡아 ‘우리 시대 가장 성공적인 물리학 이론’으로 평가받았다. 이 이론은 트랜지스터, 레이저, 화학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되어 현대인의 삶을 설명하고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완벽한 이론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개별 사건들을 묘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습니다. 그 신은 존재하는 것들의 질서가 잡힌 조화 안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 신은 인간의 운명과 행위에 관심 있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신은 전통적인 종교들에서 말하는 인간의 의지가 투영된 그런 신이 아니다. 그는 우주 안에 숨겨져 있어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질서와 조화하는 신이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출처 : 경향DB)


아인슈타인의 새 이론인 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처럼 처음에는 기꺼이 수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GPS나 블랙홀 같은 현상은 그의 이론을 통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를 창조한 신이 아니라,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의 생각을 알고 싶어 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현상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우주 현상의 존재이유를 설명하려 시도한다. 그는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내기 오래전에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통해 우주 질서를 설명하려는 섬광을 보았다.

이 내면의 소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하고, 서투르며 즉흥적이다. 이성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 소리는 우리가 이성이라는 신전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엎드려 숭배할 때, 우리의 본성을 자극하는 광기(狂氣)다. 우리는 쉽게 일상생활 속에서 이성을 기반으로 한 ‘신전’으로 가 해답을 찾으려 한다.

아인슈타인의 종교는 바로 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이다. 그는 이 마음을 ‘거룩한 선물’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얼마나 남들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선물’을 무시하고 있는가?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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