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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찐따’란 말은 국어사전에 없는 비속어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이 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 읽었던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일본어로 짝짝이를 뜻하는 찐빠(跛)에서 왔다고 추정될 뿐이다. 어린 시절 병을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작가 이철용은 이 때문에 주변에서 찐따란 놀림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주로 장애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대략 ‘한심한 부류’를 지칭하는 비하어로 쓰인다.

지리적 요인이 아니라 계급, 연령, 성별, 종교, 인종 등과 같은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분화된 특정한 사회집단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어휘를 사회방언(social dialect)이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 집단에서 흔히 사용되는 사회방언 중에 루저, 잉여, 삐조리, 왕따는 물론 ‘찐따+찌질이+버러지+거지’의 조합인 ‘찐찌버거’ 같은 합성어가 있다. 같은 대상과 개념이라도 표현하는 어휘가 그만큼 많다는 것은 그 사회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런 말이 넘쳐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흔한 속설 가운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어딜 가든 대충 중간만 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속설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정상성을 강제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경쟁사회 논리와 맞물려 집단이 제시하는 정상성은 강력한 규범이 된다.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진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쉽게 루저, 잉여, 삐조리, 찐따, 찌질이가 되어 비정상으로 내몰린다. 학교나 집단에서 그런 부류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선 패거리를 만들어야 하고, 패거리의 인정이 필요하다. 찐따나 루저가 아니라는 걸 인증받기 위해선 집단 내부의 누군가, 주로 약자를 고발하고 배제시켜야 한다. 이런 방식의 폭력적인 왕따 사냥은 집단의 모든 구성원을 흔히 ‘선빵’이라는 예방전쟁(preventive war) 구도로 포섭한다. ‘찐따’가 되기 싫어서라도 ‘일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에 지배당하는 것을 교육현장 탓으로 돌리기 쉽지만, 사실 그 출발은 가정에서 비롯된다. 친척끼리 모였을 때조차 내가 먼저 당하지 않으려면 ‘선빵’을 날려야 한다. 집안 식구 중 제일 처지는 사람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 잔소리의 과녁이 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조차 스스로 정상성의 범주 밖에 있는 것은 아닐까, 움츠러들고, 상처받는다. 명절에 친척끼리 모여 가장 즐기는 게임이 이른바 품평게임이다. 아이의 성적은 형제, 자매, 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신해 치르는 대리전쟁이다. 말랐으면 말라서 걱정, 뚱뚱하면 뚱뚱해서 걱정이다. 수학을 잘하면 영어가 걱정이요, 영어를 잘하면 국어를 못해서 걱정이다. 대학 가기 전까지는 입시가 걱정이요, 대학 가면 취업이 걱정이고, 취업하면 결혼이 걱정이고, 결혼하면 출산이 걱정이고, 출산하면 집, 승진 걱정에, 다시 아이들 걱정으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의 무한체계가 반복된다. 가정에서 학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응축된 분노가 쌓여서 사회 전체가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들어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상태가 된다. 길에서 양보해주지 않는 차량을 발견했을 때, 순간 감정이 폭발하는 이유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란 경험을 어려서부터 반복적으로 체득한 결과인 셈이다.

집단이 제시하는 규범, 정상성의 추구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고민을 거세하고, 항상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라는 형식을 추구하게 만든다. 인식의 외주화, 의식의 식민지화인 셈이다. 이번 명절에는 우리 모두 ‘친척’이 아니라 진짜 ‘가족’이 되어 만나면 좋겠다. 아이들의 성적이나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관심을 갖기를, 상대의 개성과 인격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와 그를 긍정하기를. 타인에게 정상이길 강요하기에 앞서 자신의 관용도가 충분히 정상적인지 먼저 되묻도록 하자. 가정과 사회의 평화를 위해, 우리 모두 찐따와 루저를 벗어나기 위해.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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