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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제19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이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8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이 되는 해이다. 이 70년의 세월 중 6·25 한국전쟁의 시기를 빼면 앞쪽 30여년은 군사독재의 국민총동원 산업화 체제였다. 이 체제는 ‘민주화’와 더불어 ‘세계화’라는 큰 파도에 휩쓸려 변화됐다. 시공간의 제약이 풀리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만능의 욕망이 분출됐다. 이 뒤쪽 30여년을 ‘성취의 청년기’와 ‘축적의 중년기’로 보낸 세대는 지금 우리 사회의 장년과 노년이 됐다. 반면 이들 슬하에서 자란 당대의 청년과 중년은 풍요 속의 상실과 혐오를 되씹으며 나이를 먹는다.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의 ‘위대한 유산’을 잘 정리하지 못하면, 향후 30여년은 무기력과 자괴감의 ‘위험한 청산’이 될 수 있다는 경보 단계는 이미 지났다. 차기 정부의 5년은 그 향배를 가를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선다.

ⓒ 경향신문

이 점에서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세계화의 원조국에서 부실한 민주주의가 어떻게 오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세계화가 밀어붙인 사회해체의 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구제할 공동체의 역량과 문화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 무능한 주류와 과격한 비주류는 책임도 못 질 한판 도박에 모두의 운명을 내던질 수 있다는 사실, 그것도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반하는 비극으로 말이다.

세계화의 대표적인 문제로 부상한 청장년의 생존 문제를 직시하는 대신 이민자 배척을 선동한 결과는 대영제국의 ‘독립기념일’을 자축하는 허탈한 희극이기도 했다. 이 희비극은 앵글로색슨족과 기타 인종, 소수 부자와 몰락한 중산층, 세금 안 내려는 기성세대와 낼 세금이 없는 청년세대, 대물림 엘리트와 미개한 대중으로 사회를 찢어놓고 폭력을 불러낸 세계화라는 이름의 기업독재와 그 극장정치의 민낯이다.

유럽경제공동체 잔류를 결정했던 1975년 영국의 국민투표가 2016년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기까지 40여년이다. 2016년 6월23일의 브렉시트는 그 세월 동안 영국이 택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사회적 출구의 좋은 원천들을 간과하고 나쁜 원천들에 휩쓸려 당도한 ‘마지막 선택’일지 모른다. 물론 ‘마지막’은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영국과 유럽은 브렉시트의 교훈을 돌아보며 암중모색을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의 좋은 탈출이 무엇이어야 할지 대비해야 한다. ‘치킨게임’의 브렉시트와 다른 상생의 ‘코렉시트(Korexit)’를 맞이하려면 대한민국 건국 70년을 전후해 ‘탈(탈) 70년’의 방향을 잡고 이후 40년을 기획하면서 지역과 생활 단위의 작은 경제와 작은 정치라는 제방을 쌓아야 한다. 이 대안이 없다면 ‘헬조선’의 중앙집권제와 국민투표는 언제든 도박으로 흐를 수 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방분권과 지방재정 확대를 위한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앞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함께 행사되는 새로운 민주주의 운영체제”를 피력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같은 견해다. 중국 자본의 초고층 타워와 대규모 리조트 개발에 제동을 건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주민의 참여와 소득 증대를 고민했을 것이다. 이들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지역 현장에 입각한 지방 분권의 구상보다 앞서는 국가적 의제는 앞으로 없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를 통한 주민자치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중앙정부가 쏟아내는 국가적 현안과 이를 받아쓰는 중앙 미디어의 빅뉴스는 ‘나의 현실(actuality)’이 아니라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해’의 겁박이나 본말을 어지럽히는 탁한 소문일 뿐이다. 단적으로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일방 통보한 미국 및 한국 정부와 이를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하자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영국 전총리 같은 주장은 나의 현실이 아니다.

혹자는 국민의식 부재라 탓하겠지만, 그 실종을 초래한 당사자는 나의 삶에서 유리된 유령 같은 중앙의 정치와 정부다. 지역이 국가 이슈가 되려면 영남권 신공항이나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를 둘러싼 지방정부 간 대결처럼 중앙의 간택을 바라며 극렬하게 떼를 쓸 때이다.

이조차 없던 일로 하겠다는 중앙정부의 통보 앞에서 주민자치 없는 지방자치의 토호 이기주의만 부각되고 남은 것은 주민의 열패와 상처다. 나의 문제를 이웃과 주민자치로 협의해 지방자치로 실현하고 그런 지역들이 모여 국가 미래를 계획하고 조정해 본 경험이 우리에게 없어서 그렇다.

그렇게 건국 70년이 쌓였다. 각종 최악의 불행지표가 오늘의 고초라면, 저출산의 인구절벽은 내일의 재앙이다. 어린이집부터 대학까지 폐교가 잇따르면 치안센터, 공중보건소, 동주민센터도 인원을 감축할 것이다. 그럼 우리 주변의 생활 터들도 폐점이 늘어난다. 생활권의 이런 문제들에 중앙의 정치와 정부로 대처할 수 있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없다. 그럼에도 권력을 독점한 중앙은 지방자치의 희미한 무늬조차 지우려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건국 70년, 2017년 대선을 놓고 주어진 ‘마지막 선택’의 전말이다. 요컨대 ‘탈 70년’의 ‘코렉시트’는 불가피하며 관건은 ‘정권을 교체하면 된다’가 아니라 지방분권으로 가는 ‘코렉시트’를 선택하는 데 있다. 세계화를 하지 않을 자유가 없었던 이 나라에서 세계화를 통제할 집단지성은 지방분권에서 나올 수 있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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