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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경력의 34세 연극배우인 그는 프리랜서였다가 2년 전 거리예술을 하는 극단에 들어갔고 1년 전 연극교실의 강사를 맡았다. 이 연극교실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있었다. 참여 주민의 이야기를 가지고 창작극을 만든다, 주민이 연기를 익히는 것은 동네에서 자기 역할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 강사는 연극 교육이나 연습 시간보다 더 많은 일상을 참여 주민과 같이 보낸다, 강사배우와 주민배우는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동일한 과제를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의 경계와 연결이 명확해야 한다, 취미 활동과 자신을 변화시키는 실천은 다른 것이다 등등. 과연 이 연극교실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강사인 그는, 두 살 연상의 주민배우와 지난 7월7일 결혼식을 올렸다. 주민배우를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신청한 배우자는 출판사 직원인 동네 주민이었다. 이 부부의 생업은 다르지만 둘의 인연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서로의 모습”에 반하면서 비롯됐다. 작년에 시작된 성북구 미아리고개연극교실에서 만난 부부는 강사 13명과 주민 59명이 만나 형성된 간이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올해엔 미아리고개시민극단으로 발돋움했고 부부는 여전히 활약 중이다. 각자 살던 부모 집에서 성북동 신혼집으로 독립한 부부에게 달라진 것은 이뿐이 아닐 것이다. 결혼식 축가로 합창을 불러준 연극교실의 주민배우 동료들과 만들어가는 마을과 예술의 신세계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같은 연극교실의 또 다른 강사였던 경력 15년의 34세 연극배우는 오는 9월24일 결혼한다. 배우자는 여섯 살 연하의 초등학교 교사이며 성북구의 1인 가구였다. 배우자의 고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동선동에 신혼집을 차릴 예정이다. 배우자는 반복되는 생활에 지쳐갈 무렵 현수막을 보고 “저기 가면 뭘 배울까” 궁금해 신청했다.

연극교실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알고 지내게 된 것이 신기했던 배우자에게 강사는 “착실하게 살면서도 자기 뜻을 펼쳐나가는 삶”을 발견했고 거리공연 도중 청혼했다. 미아리고개시민극단의 동료이자 예비부부는 요즘 “예술가는 자유로운 존재인가, 사회 부적응자인가” 고민하고 극단 대표는 “가장 자유로우면서 가장 예의 반듯한 존재가 예술가란 생각은 안 해봤어?” 하며 토론을 벌인다.

공동체 예술을 하면서 유목민으로 살아온 45세의 극단 대표는 연극교실의 “이상한 분위기에 휩쓸려 속속 잡히는 결혼 날짜들”을 지켜보다가 오랜 연애 끝에 동료 배우와 지난 5월29일 대학로에서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송경동 시인의 낭독과 김반장의 공연 속에서 양가와 동료 그리고 연극교실 주민배우들이 어우러진 연회극(宴會劇) 형식의 결혼식에서 이들 모두는 예술과 마을이 서로를 이끄는 어떤 공동체의 비현실을 체감했다.

그러나 5월의 햇살과 흰 차광막 아래 곡성과 제주에서 올라온 양가 어르신들과 젊은 하객들이 일제히 쓴 황금빛 밀짚모자의 물결을 바라보며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집단 실행한 그 거리와 시간은 분명 현실이었다.

물론 같은 연극교실 안에도 결혼과 다른 현실들이 훨씬 많다. 모 주민배우는 “연애가 목적이냐, 연극이 목적이냐” 따지고, 또 가장 먼저 연애를 한 31세 동갑의 강사 커플은 가장 먼저 헤어졌다. 주목할 것은 헤어진 연극배우 한 명이 석관동에서 어린이 연극교실을 진행하며 구립도서관을 마을극장으로 바꾸기 시작한 비현실이다. 그가 협업하는 새 극단 이름은 ‘너다워서 아름답다’인데 연고지가 없다가 월곡동과 석관동에서 ‘예술마을 만들기’에 참여하게 됐다. 성북구에선 정릉, 성북, 삼선, 동선, 돈암, 월곡, 석관동에서 ‘예술마을 만들기’를 진행한다. 여기엔 동 이름을 딴 여러 색깔의 연극교실이 작년 4개(주민 122명)에서 올해 6개(주민 145명)로 확산되고 있다.

‘예술마을 만들기’란 집단 지성과 감성의 기획인데 ‘예술을 통한 마을’과 ‘마을을 통한 예술’을 상상하며 장소와 주민 기반으로 비현실이 현실에 파종되고 비예술이 예술로 전이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이는 성북구 예술인과 기획자들의 개방적 네트워크인 ‘공유성북 원탁회의’에서 추진해왔고 ‘찾아가는 동복지센터’와 ‘협치서울’의 흐름과 결합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마을과 예술의 중매를 통한 결혼식이 잇따랐던 것이다. 가난한 연극쟁이와 동네 주민의 결혼식으로 치달은 “이상한 분위기”는 비현실이라고 저만치 치워둔 사랑이 겁도 없이 현실 복판으로 걸어들어온 사건이었다.

올해부터 ‘공유성북 원탁회의’는 ‘우리동네 공동부양’이라 쓰고 ‘우동·공부’로 줄여 부르는 릴레이 학습을 시작했다. 사회적 경제, 도시 재생, 현대미술 등 3탄까지 진행됐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같은 꿈을 꾸면서 한편에선 “기도하고 일하고 읽어라”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칙대로 같이 염원하고 행동하고 공부하는 중이다. 수칙은 이어 말한다. “그러면 신께서 지체 없이 함께하시리라.” 아마도 예술의 신은 마을의 신일 것이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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