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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과 5월, 탈북 행렬에 대한 보도가 연달아 나왔다. 4월8일, 중국 닝보 소재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브리핑 후, 정부는 북한 정찰총국 대좌 한 명도 작년에 입국했다고 다음 날 공개했다. 그리고 5월 중순, 중국 산시성 소재 북한식당 여성 종업원 3명의 탈북을 예고한 후, 6월1일 정부는 그들의 입국을 알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에서 탈북자 홍보에 직접 나섰다. 우간다 방문 중 교포간담회에서 북핵 포기와 대북제재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최근의 탈북 사례를 상세히 설명했다. “북한의 민생이 어려워 가족이 아닌 사람들끼리 13명이나 집단 탈북했다”, “해외에 파견된 근로자들의 탈북이 이어지고 있는 점은 주목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직접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들의 탈북 원인까지 분석하면서, 마치 그것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인 것처럼 홍보했다. 더 나아가 이 같은 탈북 행렬이 북한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인 것처럼 덧붙였다.
입국 후에도 재북 가족들의 안위를 우려해 사실관계 확인도 조심스러워 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박근혜 정부는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정부의 탈북자 정보 공개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의 서비스는 아닌 것 같다. 김정은이 집권 5년차에 7차 당대회를 개최하고 체제가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과시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북한 내부적으론 체제가 위태롭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선도하고 있는 유엔 대북제재도 효과를 내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정부 자료를 보면 그렇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통일부가 최근 발표한 ‘탈북자 입국 현황’에 따르면, 2009년 2914명 입국으로 정점을 찍은 뒤 국내 입국 탈북자수는 점점 감소해 2015년에는 1276명으로 줄었다. 올해는 3월 말까지 34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 객관적 자료에 의하면 김정은 시대에 오히려 탈북자가 줄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체제가 불안정해서 앞으로 탈북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북한 보위사령부에서 직파돼 국내외에서 간첩활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홍강철씨._경향 DB
탈북의 원인이 무엇이건, 집단탈북이 북한체제 붕괴의 전조이건, 탈북 소식의 신속한 공개 의도가 무엇이건,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데려오면서 북한체제의 열악상을 부각시키고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남한으로 온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정책적·제도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탈북자와 관련한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탈북자들이 하루 2만원을 받고 어버이연합이 주도하는 친정부성 시위에 동원됐고, 그 돈의 출처가 전경련이었다는 보도다. 남한으로 오기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 때문에 목숨 걸고 탈북한 이들이 입국 후, 일당 2만원짜리 알바 신세로 전락했다. 정부기관과 대통령이 나서서 탈북 행렬을 중계방송하는 마당에 ‘게이트’가 터진 꼴이 되었다. 북한이 역선전하기에 좋은 소재가 생겼다.
탈북자들은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미리 온 통일의 전령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들의 정착지원을 어떻게 했길래 일당 2만원을 아쉬워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통일부와 탈북자 정착지원을 위해 설립된 남북하나재단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어지는 집단 탈북 행렬을 북한체제가 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홍보하고 싶으면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 정착해서 삶의 질이 높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와 정책부터 먼저 갖춰야 할 것이다. 데려온 뒤, ‘나 몰라’라 2만원짜리 알바로 내몰 바에는 차라리 데려오지 않는 게 나을지 모른다. 남북하나재단이 정부예산만으로 부족해서 탈북자들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다면, 전경련 같은 경제단체로부터 지원받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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