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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화장실 ‘묻지마 살인’에 이어 수락산에서도 혼자 등산하던 여성이 살해되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 ‘여성 혐오’ 살인이냐 ‘정신 분열’ 범죄냐 하는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같은 사건도 그 원인을 보는 시각이나 인식 구도에 따라 대처방식이 달라진다. 따라서 문제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구도를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다.

여성 혐오론이 남성과 여성 일반을 사회적으로 대립시키는 구도라면, 정신 분열론은 범죄자 개인의 정신 질환이 문제라는 구도다. 전자의 경우, 범죄자 개인이나 가정사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 뿌리가 있다고 보는 점에서는 타당한 면이 있지만, 남성과 여성을 적대관계로 설정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뒤틀어버릴 위험이 있다. 후자의 경우, 그 개인의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극단적 행위 뒤에 숨은 사회적 차원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당사자를 처벌하고 격리해도 유사 범죄는 계속 일어난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학자나 의사들은 이런 문제의 진단에 있어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결합시켜 본다. ‘유전적 요소도 있지만 성장과정에서 받은 사회적 상처나 욕구 불만’이 문제라는 시각이나 ‘눈치 보기가 압도적인 사회 분위기나 무한 경쟁 사회’가 문제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들도 해결책에 가면 정신과 의사를 맘 편히 찾으라거나 부모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는 식으로 귀결된다.

물론, 정신 질환을 사회적으로 ‘낙인’ 찍는 사회도 문제이고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부모의 욕심도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갈수록 우리 사회가 ‘승자 독식’ 사회 내지 ‘강자 동일시’ 사회로 간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좌절과 개인적 분노의 결합이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100점과 1등만 중시하는 분위기, 직장이나 사회에서 돈 많고 권력 센 자들이 목에 힘주는 분위기, 아래로 갈구고 위로 비비는 풍토, 이런 사회 구조를 혁파하지 않고서는 개인적, 조직적, 사회적 처방전이 실효성을 갖기 힘들다.


시민들이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규정한 경찰에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_경향DB


실제로,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 경청, 신뢰하기보다 남자와 여자, 우등생과 열등생,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 등으로 나눠 경쟁을 시키거나 차별을 예사로 한다. 직장이나 사회 일반에서는 각종 ‘충’이란 이름이 널리 퍼진다.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이런 호명은, 된장녀나 김치녀로 상징되던 여성 비하 발언이 보다 일반화한 것으로, 오늘날 일베충, 맘충, 메갈충, 설명충, 한남충 등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이런 명칭 역시 사태의 본질을 놓친 채 사회적 약자끼리 적대관계를 형성, 서로 싸우는 꼴이다. 지배층의 관점에서 보면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의 완성이다.

고소득층 사교육비 지출이 저소득층의 9배를 넘었다고 한다. 이는 소득 양극화를 반영한다. 빈부 양극화가 교육 양극화를 초래하고, 또 교육 양극화가 빈부 양극화를 심화하는 악순환이다. 물론, 학부모 신상정보란이 사라지고 입사 원서에 출신 학교 난을 없애려는 시도도 있다. 그러나 심지어 저·고소득층의 사교육비 지출이 같아진들 문제의 본질은 여전하다. 사태의 본질은 우등생과 고성과자, 연줄 있고 눈치 빠른 자가 고위층이 될 확률이 높은, 불평등하고 위계적인 사회 구조 자체이기 때문이다.

공업계 고교에 다니다 지하철 정비원으로 입사한 청년이 스크린도어와 전동차 사이에 끼어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맘 편하게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컵라면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눈시울을 적신다. 최근 2달 동안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는 8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고 4명이 크게 다쳤다.

지금도 누군가는 다치며 죽어간다. 지하철역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죽은 여성이나 혼자 등산을 갔다가 죽은 여성의 삶이 억울하듯,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삐 일하다가 죽은 청년이나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의 삶 역시 억울하다.

이 억울한 죽음들을 예방하려면 승자 독식 내지 강자 동일시의 사회 풍토와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좌절과 증오를 사회적으로 막아야 한다. 승자 독식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잠재적 피해자임과 동시에 잠재적 가해자다.

이 피해와 가해의 잠재성을 제대로 극복하려면 불평등한 피라미드 질서 자체를 원탁 꼴로 바꾸어야 한다. 즉, 사회적 약자끼리 적대적으로 싸울 일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며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자본의 전략이 경쟁과 분열이라면, 사람의 희망은 연대와 협동에서 나온다.



강수돌 ㅣ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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