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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보고 외국인들이 많이 하던 말은 “빨리빨리!”였다고 한다. 동작도 빠르고, 성격도 급하고, 빨리 먹고 등등의 예시가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과연 “빨리빨리!”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몸이 굼뜨거나 말이 느릴 때 혹은 밥을 천천히 먹는다고 “빨리빨리!”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서다.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느릿느릿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답답한’ 것을 싫어한다. 답답하다는 것은 뭘까? 국어사전에 ‘답답하다’를 표제어로 입력하면 “애가 타고 갑갑하다”와 “융통성이 없이 고지식하다”고 풀이한다. 애타는 데 답을 안 줄 때를 떠올리면 “속이 터진다” 혹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떠오른다. 빨리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융통성 없이 고지식한 사람을 떠올리면 뭔가 의견을 냈을 때, 절차를 지나치게 따지거나 안 되는 이유만 찾는 사람이 떠오른다. 결정 안 난 불안정한 상황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한국인은 드물다.

요컨대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말할 때는 ‘피드백’이 늦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드백은 “어떤 일로 인해 일어난 결과가 다시 원인에 영향을 미치는 자동 제어 원리”라고 위키백과는 정의한다. 원래 과학기술 용어인데 회사 등에서 쓰면서 일상어가 됐다. 피드백이 늦다는 건 누군가의 요청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거다. 몸을 빨리 움직이든, 늦게 움직이든, 타이핑이 빠르든 느리든, 중요한 것은 요청과 질의가 왔을 때 뜸들이지 않고 어느 정도 더 ‘진전된’ 답을 내놓는 게 된다.

일상에서도 피드백이 중요해지는 상황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은 애인이나 상사와의 채팅창에서 1이 사라진 후 반응이 오는지로 초조해한다. ‘읽씹’(읽고 대꾸 안 함)은 고통이고 무례함이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교통카드가 안 찍힐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재빨리 자리를 비키곤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자리를 비켜주면서 “여기요!” 하고 소리를 지른다. 능숙한 역무원은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부터 하고 개찰구로 다가와 문제를 해결한다. 시민들이 답답해하는 역무원은 느긋하게 걸어오는 역무원이 아니다. 버튼을 여러 번 누를 때까지 대답이 없는 승무원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도 피드백이 빠르다는 의미다. 상사나 동료가 물었을 때 완벽하게 대답하는 것도 좋지만, 파악할 수 있는 최대한을 통해 ‘진전된’ 답을 내놓는 것이 핵심이다. ‘진전된’ 답을 내놓으려면 일머리를 꿰고 있어야 한다. 일머리는 일의 내용, 방법, 절차를 의미한다. 매 시간 혹은 몇 시간마다 선배 기자에게 상황 보고를 해야 하는 신입기자의 수습과정이나, 군대에서 ‘중간보고’의 중요성을 신병에게 가르치는 교육 모두 그러한 일머리를 숙지시키는 훈련이다. 빽빽하게 짜인 ‘표준교범(FM)’은 보고를 거치는 동안 성과를 위한 융통성 앞에서 늘 조정될 수 있다.

빠른 피드백을 바라는 가치 지향은 조직문화를 넘어 한국 사회의 특성 같아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감은 ‘답답한 일처리’로 ‘골든타임’을 놓친 것에서 출발했다. 아무도 결정하지 않았고 진전된 상황 처리를 하지 못했다. 믿을 수 있는 정부의 ‘컨트롤타워’는 세워지지 않았고, 국가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의사결정을 방기했다. 상황의 내용, 조치의 방법과 절차 파악은 때가 지난 후 지지부진하게 이뤄졌다. ‘답답해 미치는 상황’이 실제 벌어진 것이다. 반대로 얼마 전 강원 고성 산불 대응은 시민들이 정부에 기대했던 피드백이 잘 이뤄진 상황이었다. 정부는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상황상황마다 성가실 정도로 분명한 지침을 줬다. 집권하자마자 20만 이상의 시민이 민원을 제기했을 때 답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방’부터 개설한 정부의 돋보이는 대응이었다.

피드백이 빠른 사회, 피드백을 빨리 하길 바라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진상 소비자’나 ‘진상 민원인’의 갑질이 문제인 사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슈가 발생해 공론화되어 빠른 상황 파악, 빠른 조치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이 아닐 때도 많다. 심지어 과학기술자들의 기초연구마저 짧은 기간마다 ‘중간보고’를 해야 하다 보니 보고서만 쓰다 끝난다는 말도 나온다. 진득하니 앉아서 지루한 토론과 조심스러운 해법 제시가 필요한 순간, 미봉책만 세워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상에 늘 시급하고 중요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빠른 피드백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피드백을 빠르게 해야만 하는 세상을 어떤 사람들은 어질어질하고 피곤하다고 한다. 덜컹덜컹 시행착오를 겪으며 피드백을 통해 고쳐갈 거면, 애초에 찬찬히 잘 만드는 게 낫지 않냐는 말도 한다. 그런데 이런 문화와 행동양식을 쉽게 맘먹는다고 바꿀 수 있긴 한 걸까? 외려 피드백 사회의 특징들에 맞게끔 일하는 방식, 경영방식, 정치가 기민하게 대응해 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한국 사회가 잘 온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산업계에서 한국이 제품 애프터서비스(A/S)의 최고 선진국이 되고, 신제품을 실험할 최고의 ‘테스트 베드’가 된 이유기도 하다. 이따금 관점을 달리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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