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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수소경제 선도를 천명했다. 수소경제는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경제시스템이다. 수소는 흔하다. 우주의 75%를 차지하며, 지구상에 10번째로 많은 원소다. 백금 등을 촉매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백금보다 훨씬 싼 루테늄 촉매 개발도 초입이다. 수소는 방전이 있는 배터리 보관과 달리 액화 상태로 부피를 줄여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동력원으로 쓸 때 탄소 배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1월17일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2040년까지 수소(연료)자동차 620만대를 생산하고 그중 330만대를 수출해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겠단다. 내수 비중이 절반에 가깝다는 이야기는 국내 시장에서 구동률을 높여서 테스트베드로 활용한 후 시행착오를 개선해 세계시장에서 선발주자(first mover)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정책이 돕겠다는 뜻을 함축한다. 지난해 14개였던 수소충전소도 2022년까지 310개, 2040년까지 1200개로 확대한다고 한다. 이달엔 규제 샌드박스 승인 첫 사례로 도심지역 수소충전소 설치를 허용했고, 당장 국회에 들어설 예정이다.

쉴 새 없이 수소 이야기를 들었다. 과학기술자 모임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정부 정책을 토론하다 화제가 전기차냐 수소차냐 하는 논쟁으로 옮겨갔다. 전기차는 충전된 전기로 모터를 구동하고, 수소차는 수소연료전지로 전기를 만들어 모터를 구동하여 운행하는 차다. 운전하며 듣는 경제 팟캐스트에서는 전기차 전문가와 수소차 전문가가 격렬하게 토론한다. 주식 하는 사람들은 ‘수소 테마주’를 찾는다. 경제성, 환경,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안이라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기술 논쟁은 엔지니어들에게 맡기더라도, 짚고 갈 사회적 논점이 몇 가지는 보였다.

먼저 예산의 크기로 볼 때 ‘거대한 낭비’가 아니냐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를 언급하며 수소경제가 대형 ‘스캔들’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4대강 살리기 총 예산이 31조원이었다. 수소경제 투자는 기존 에너지 정책이나 제조업 정책과 ‘병행해서’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예산 규모가 작다. 2019년 정부 1년 예산은 약 470조원이다. 수소충전소 개당 설치비는 현재 30억원이다. 전국에 1200개를 한번에 지어도 3조6000억원으로 정부 예산 중 0.7%에 그친다. 계획대로 22년에 걸쳐 나눠 진행할 경우 매년 0.03% 수준의 예산만 쓰게 되는 셈이다. 물론 수소 파이프라인 설치는 비용이 더 들겠지만, 기존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망을 활용하든 신규 매립을 하든 스캔들 수준의 비용이 예측되진 않는다. 외려 ‘활성화 로드맵’ 이름에 비해선 적은 예산 투입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정부 예산 470조원 경제에서 ‘스케일’ 감각은 바뀌어야 한다. 수소경제에 ‘올인’하는 것 같은 현대자동차도 수소차와 전기차 모두의 양산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둘째로 대기업이 원하는 인프라를 왜 정부가 설치해주냐는 논란이 있다. ‘기업의 일은 기업이, 정부의 일은 정부가’라며 수소경제를 기업의 일로만 보는 시각이다. 테슬라는 전기차 충전소를 자체 경비로 설치했다. 4년간 자체 충전소 ‘슈퍼 차저’의 충전비도 무료로 했다. 마찬가지로 현대차나 부생수소를 팔기 바라는 거대 정유사들이 인프라 투자에 돈을 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다. 실리콘밸리처럼 벤처캐피털이 투자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듣는다. 그런데 대한민국 경제사는 원래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국가가 주도적으로 투자하고 개입하면서 움직였다. 물류 네트워크를 형성하려 정부 주도로 고속도로를 개통했다. 중화학공업화를 위해 1973년부터 철강, 조선, 기계, 전자, 화학, 비철금속공업 6개 분야를 콕 찍어 ‘관치금융’을 이용해 육성해 왔다. 2000년대 정보기술(IT) 산업 역시 김대중 정부의 산업정책을 통해 힘을 받았다. 위험도가 높은 과제를 국가가 힘을 주어 공적으로 지원하는 방식. 명암이 있지만, 한국이 잘해온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왜 수소였을까”를 고용 측면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생산직을 쉽게 늘릴 수 있으면 많은 고용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안되면 기자재 업체 등 후방산업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수소차는 복잡도가 높아 고용을 더 많이 만들어 낸다. 전기차의 경우 자동화로 인해 직접 고용하는 생산직이 거의 없다. 배터리 업계를 제외하면 후방산업 연계도 별로 없어 추가 고용도 미미하다. 수소차 생태계는 수소 생산·저장·운송·활용 차원에서 후방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 2040년까지 42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니 정부가 ‘꽂힐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라 특혜를 준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앞으로의 에너지 전환과 이로 인한 산업과 고용, 사회와 문화의 변화가 어찌 될지 아직 예측하기에는 섣부르다. 삶의 방식 전환에 대한 시민들의 준비도 필요할 것이다. 정부가 계획대로 목표 달성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규모의 경제와 기술혁신을 통한 비용 절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소경제 선도 추진은 스캔들(이른바 ‘사화’)이라 하기에 너무 소소한 일이다. 그저 추이에 맞춰 사회적 논의를 차근차근 하면 될 일이다.

<양승훈 |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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