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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집중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단 한번도 뒤집히지 않았다. 통계청 2017년 지역소득(잠정) 추계 자료와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2017년과 2018년 시·도 인구통계를 봤다. 인구를 보자. 서울의 인구 중 약 10만명(0.9%)이 한 해에 줄어들었으나 경기도의 인구는 20만명(1.53%)이 늘었다. 인천도 0.2% 정도 늘었다. 수도권 인구비중은 대한민국 인구의 50%를 채우고 있었다. 사실 더 크다고 봐야 한다. KTX와 국철로 1시간 거리로 연결된 충청권을 포함하면 인구 중 60%가 된다. 충남은 1만명(0.5%)의 인구가 늘었다. 충북도 5000명(0.3%)의 인구가 늘었다. 행정기관이 대거 이전한 세종시에는 3만명(12%)의 인구가 늘었다. 그사이 호남(광주·전북·전남)은 3만5000명의 인구(0.7%)가 줄었다. 대구·경북에서는 2만8000명의 인구(0.5%)가 줄었다. 동남권(부산·울산·경남)에서도 4만5000명의 인구(0.5%)가 줄었다. 강원도에서도 7000명의 인구(0.5%)가 줄었다. 젊은 연령대가 소도시나 군·면 단위에서 줄어들고 노령화가 지속돼 인구가 줄어든다는 ‘인구소멸’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시를 제외한 7대 광역시·특별시 중 인천을 제외한 모든 대도시의 인구가 줄고, 감소를 주도한 곳이 호남과 영남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꼭 소도시와 군·면 단위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권역 내에서는 대도시로 청년들이 일자리와 대학 진학 등 때문에 떠나고, 권역 사이에서는 수도권과 충청권으로 나머지 지역 사람들이 이주를 한다.

경제비중을 봐도 경향은 같다. 한때 동남권의 경제력이 30% 이상을 차지했지만 2017년 기준 15% 내외로 줄었다. 구미의 전자산업을 포함해야 간신히 영남이 25%를 넘기는 수준이다. 호남은 9% 수준으로 그나마 남해안 벨트의 철강과 석유화학을 포함해서 가능한 일이다. 2017년 전체 GDP 상승률 3.2%를 초과한 권역은 경기(5.9%), 인천(4.0%), 충북(3.4%), 충남(3.3%), 제주(3.3%)인데 이 중 넷이 넓은 의미에서 수도권에 포함된다. 경기도 화성·기흥·천안·이천과 충청북도 청주의 반도체산업이나 충남의 석유화학산업 등을 떠올려 보면 수출을 주도하는 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위기를 겪은 자동차·조선·기계산업이 위치한 곳은 동남권과 호남이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힘이 수도권이 강하기 때문에 인구를 더 흡수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 집중을 반전시킬 핵심 요소가 아직 등장하지 않는 셈이다. 

혁신도시 조성. 분권화와 균형발전을 위해 최근까지 해온 정부의 조치다. 153개 대상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을 뽑고 150개의 기관을 지난해까지 이전 완료했다. 광역자치단체마다 십수개씩 분산시킨 꼴이다. 혁신도시는 균형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을까? 인구 유입은 공공기관 직원 이주 외에는 같은 권역의 중소도시와 농촌 인구를 흡수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인구 이동을 보더라도 성장이 아니라 흡수하는 거점에 그친다고 볼 수 있다. 수도권의 범위만 세종까지 넓어졌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아직 혁신도시가 정착되지 않았고, 지금의 수도권 집중화는 경기침체의 여파일 뿐 혁신도시의 잠재성은 유효하다고도 볼 수 있다.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혁신도시 자체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GTX 착공을 기다리며 어떻게든 수도권에 버티겠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순회국회’다. 수도권은 대기업 본사들이 위치하고 미디어, 서비스 산업의 중심이면서 정치권력의 중심이기도 하다. 행정권력은 이전했지만, 민의를 대표하기 위해 선출된 입법권력은 70년간 여의도에서만 모든 것을 처리해 왔다. 권력의 지리적 분권화가 안된 셈이다. 주민 관점에서 보면 의원들을 선거 때 외엔 보지 못하고, 보좌진·입법관련 기관과 유관업계는 지역 사정을 통계자료와 지표, 인맥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하기 일쑤다. 의원들은 지역구 SOC 예산을 따기 위해 경합을 벌이지만, 실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파악하기 어렵다. 만약 국회가 1년에 한 번씩 호남·영남·충청·강원·제주 권역의 혁신도시나 거점도시를 순회하면서 열리면 어떨까. 박원순 서울시장은 수도권 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 국회의 이전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했는데, 국회를 순회해 운영할 경우 한 도시로 옮길 때의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순회국회는 국회의원들이 현장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보좌진도 지역에 대한 감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것들을 준거로 균형발전 관련 입법을 할 수도 있다. 공기업·공사도 좋지만 젊은 지역인재들이 입법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그들과 지역사회의 정치적 지평을 넓히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매년 국회를 여는 도시들이 나라의 진짜 중심이 된다. 행정부가 지리적 중심인 세종으로 옮겨간 마당에 서울의 행정부와의 근접 소통이 어렵다고만 막기도 궁색하다. 국정감사를 행정부가 위치한 세종에서 개최하는 것도 방법이다. 막대한 비용을 말하려면 분권화를 위해 쓰는 예산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분권화와 균형성장을 위한 순회국회. 국회가 나서서 한번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다.

<양승훈 |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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