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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도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우익단체들의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그들의 행진과 구호 음악은 지난 탄핵정국에서 보았던 스타일 그대로였다. 군가를 따라 부르며 군복, 군화, 군모에 검은색 ‘라이방’을 쓴 노령의 참가자들이 여전히 대열의 전위에 선다. 이들의 외침은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절실했지만, 백주대낮에 군가와 군복을 입은 분들을 아직도 도심에서 봐야 하는 시민들의 표정이 곱지 않다. 사운드와 비주얼이 이제는 정말 지겹다는 표정들.

지난 8월3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갈 때, 입구에서 군복을 입고 그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노령의 우익단체 회원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우익 어르신의 경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던 원세훈은 국정원법,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4년 실형을 선고받고 다시 법정 구속이 되었다. “헐, 범죄자에게 거수경례를?”

우익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새 공포의 대상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냉전 시기 반공교육에 혈안이 되어 빨갱이를 색출하라는 우익단체들은 과거에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포비아를 생산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0년대 후반 우익 단체의 회원들이 군복 입고 가스통 들고 도심에 나와서 자해 퍼포먼스를 하던 시절만 해도 우익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강화된 우익들의 집단적 행동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왜 우익들은 공포가 아닌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시각적인 불편함이다. 가령 태극기 집회나 동성애 반대 집회에 동원되는 단체 중에서 기독교 우익단체들이 벌이는 퍼포먼스는 이데올로기적 ‘키치’의 극단을 보여준다. 한복을 입고 북춤을 추며 찬송가를 부르다가, 하얀 발레복을 입고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이들의 퍼포먼스는 ‘친미와 반북’ ‘기독교와 반공’이 이상야릇하게 혼합된 시각적 민망함을 보여준다. 빨갱이와 동성애자를 동일한 적대세력으로 묶어서 이들의 악령을 쫓아내려는 예식을 치르는 장면들이 종로에서 시청에서 행해질 때, 사람들은 이 시각적, 청각적 어이없음으로 인해 공포심리보다는 혐오심리를 갖게 된다.

우익의 주체들은 상식과 이성의 의지를 기각시키고,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한 극단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우익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이익을 위한 충성경쟁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SBS 방송사 앞에서 김제동을 종북 좌파로 규정하고 퇴출을 요구하며 확성기로 생떼를 쓰는 엄마부대 회원들, 서울도서관을 음식 쓰레기더미로 초토화시켜버리고, 편의점 종업원과 지하철 승객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내뱉는 태극기집회 참가 할아버지들,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시켜먹으며 폭식투쟁을 하는 일베 회원들은 이제 공포의 주체에서 혐오의 주체로 이행한다. 동원되는 수단과 방법이 ‘이념의 전쟁’에서 수행할 수 있는 수준과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들 내부의 치졸한 권력 싸움들, 돈으로 묶인 동원된 주체들과 의도된 퍼포먼스, 냉전의 감옥에 갇혀 있는 그들의 신념과 행동의 표현들은 혐오의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혐오의 주체로 변해버린 우익은 어떤 점에서 불편한 연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평생을 남을 혐오하면서 살았다. 그들은 동시대에 함께 살아온 국민들을 빨갱이, 전라도놈, 밥하는 여자, 외국인새끼들로 혐오하면서 살았다. 혐오 행위는 생존의 본능이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위협의 전략이다.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우익의 자화상은 어떤 점에서는 ‘혐오의 거울’이 반사된 자신의 모습이다. 혐오하는 자의 혐오는 그래서 본질적이며, 역사적 존재의 소멸을 ‘순간을 대하는 히스테리’로 반응한다. 혐오의 행위를 과잉되게 재생산하는 우익의 심리는 역으로 역사적 주체의 소멸에 대한 자기공포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 우익의 소멸의 순간을 위해 ‘소돔과 고모라’ 같은 그들의 혐오를 지켜볼 따름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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