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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백인이긴 하나, 북동부에 거주하는 미국의 주류 지배 계급의 와스프는 아니다. 나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을 타고 난데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수백만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이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미국인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레시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들을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의 저자인 J D 밴스는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 철강 도시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밴스의 엄마는 전도유망한 고등학생이었지만 열여덟 살에 임신을 하는 바람에 대학 진학을 미루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자 친구와 결혼했습니다.

엄마의 두 번째 남편에게서 태어난 밴스가 막 걷기 시작할 즈음에 부모는 이혼을 했습니다. 아빠는 밴스가 여섯 살 때 돈 때문에 친권을 포기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두었습니다.

아빠와 헤어진 지 2년 만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엄마에게 이후에도 수많은 아버지 후보자들이 들락거리며 하나같이 공허함과 사람에 대한 불신만 심어주고 떠날 때도 밴스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꾹 참았습니다.

마을에서 서로 욕하고 고함치고 어떤 때는 치고받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는 건 그저 일상의 한 조각이었습니다. 집에서도 폭력이 난무하는 바람에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불면의 밤이 계속됐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도 싫었지만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릴 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집은 밴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주는 장소였습니다. 엄마는 약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도 가정폭력으로 고통받았던 엄마는 열두 살의 아들을 죽이겠다고 폭행하는 바람에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밴스는 ‘할모’(외할머니)와 함께 지내야 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할모네 집이 일시적인 피난처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을 심어준 장소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병대에 입대한 손자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편지를 쓰는 할모의 애정이 있었기에 밴스는 결국 명문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의 전도유망한 젊은 사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힐빌리의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남자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뻔한 여자에게서 버림받은 자식”의 인생 유전과 ‘성공의 여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살았던 세상은 “정말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가득한 곳”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서 지출을 늘려나간다. 거대한 텔레비전과 아이패드를 산다. 이자가 센 신용카드나 고리대금을 얻어서 자식들에게 좋은 옷을 입힌다. 필요하지도 않은 집을 매매하고 그걸로 재융자를 받아 소비를 더욱 늘리다가 결국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을 떠나며 파산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는 것이지요. 파산한 사람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신분 상승이 평생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일찌감치 미래를 포기해버립니다.

그런 그들이 “오바마가 탄광을 폐쇄했기 때문이라느니,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죄다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유”를 댈 뿐 시궁창 같은 삶에서 벗어날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낙오자가 된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정부의 실패”라고 외치고 모든 잘못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즘 우파 정치인의 득세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극빈가에 거주하는 백인 노동계층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70년에는 백인 어린이의 25%가 빈곤율이 10% 이상인 동네에 거주했다. 2000년에는 그 수치가 40%로 증가했다. 현재의 수치는 이를 훨씬 웃돌 게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은 사회 양극화에 따른 소외 계층의 증가와 가정의 해체가 심각한 지경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권은 이에 따른 불만을 외부에 전가하려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북핵 공조를 빌미로 ‘한·미 FTA’를 폐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미치광이 전략’으로 우리를 불안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의 테드 리우 하원의원이 북한과 전쟁을 벌이면 “210만명이 죽고 770만명이 부상당하게 되는데 그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느냐”며 경고했다지만 트럼프에게 이런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미국 사회가 갖고 있는 진정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최근 58명을 죽이고 527명을 다치게 한 사상 최악의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부유하고 단조로운 은퇴 생활에 염증이 난 성공한 백인 남성 스티븐 패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트럼프가 ‘경멸’해 마지않는 이슬람국가(IS) 테러조직원이나 이민 노동자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미국은 사회적 차별과 모욕과 억압을 안겨주는 가난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힐빌리들이 ‘외로운 늑대’가 되어 무고한 생명을 살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힐빌리의 노래>는 그런 가능성을 경고하는 슬픈 노래로 들립니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아픈 과거를 가감 없이 까발리면서 우리가 처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저자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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