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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공유경제, 가상·증강 현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메이커 운동 등 첨단 어벤저스급 기술들의 총합인 ‘4차 산업혁명’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기술들을 서로 결합해 놀라운 것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내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신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5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후보자들은 4차 산업혁명이 ‘미래의 먹거리’가 될 것이라며 일제히 정책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그 경쟁에서 승리한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해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실천의지를 보여줬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시아’가 우리를 정말 구원해주고,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이 다시 새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기술들이 제각각 수백만명의 ‘먹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일부 엘리트들과 자본가들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며 우리를 현혹하지만 오히려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거나 대부분의 직업군이 완전히 소멸할 것이라는 공포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슈퍼컴퓨터 ‘알파고’나 ‘왓슨’이 위력을 과시한 인공지능 하나만 보더라도 기술이 안겨준 공포감이 적지 않습니다. 이광석 서울시립대 교수가 <데이터 사회 비판>(책읽는수요일)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기계에 의한 노동 대체 속도가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비해 현저히 커서 궁극에는 거의 모든 인간의 노동을 흡수해 자동 기계화될 것이란 비관론이 우세”함에도 “인공지능 이슈가 기술 전문가 엘리트와 글로벌 스텔스 기업의 암흑상자 논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가 아닐까요.

그런 측면에서 최근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 저자들의 비판서가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광석 교수는 같은 책에서 “인공지능의 기술적 발전 과정이란 자신의 불완전함을 극복하는 기술적 진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 기업의 물질적 필요조건의 장 안에서 움직인다는 데 있다. 자본 권력의 통치 질서를 언급하지 않고 인공지능 기술 미래의 명암을 점치는 일은 그래서 공허하다”며 ‘기술 과잉’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손화철 한동대 교수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북바이북)에서 “오래전 누군가 미래 사회는 비행기 여행 같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한 명의 기장이 큰 비행기를 몰고, 모두가 앉아서 소수의 승무원이 가져다주는 밥을 먹으며 눈앞에 있는 작은 스크린을 보며 즐기는 것 같은 상태가 죽 지속되리라는 것이다. 농담에 불과했던 이 이야기는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면서 점점 더 현실화되어가고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의미 있는 일자리를 유지하면서도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술이 어떤 것일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김재인의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에서는 “현재 인간의 기술 수준을 보면 이 전망(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일)은 현실화될 수 없다는 게 나의 판단입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부여한 과제를 최적으로 해결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을 짜는 알고리즘인 것은 맞지만, 알고리즘을 짜는 알고리즘은 정작 인간이 짭니다. 그러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인공지능을 수단으로 삼으라는 인공지능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여도 좋습니다.”

과학과 철학 지식을 결합해 생활어로 이야기하는 철학자 김재인은 이어서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이 아니다. 기계를 가진 인간 대 기계가 없는 인간의 대결이다. 데이터와 직관력은 말과 기수와 같다. 당신은 말을 앞지르려 노력할 필요 없다. 당신은 말을 탄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말은 자동차와 다름없으니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자동차를 타고 편안한 삶의 여행을 떠나면 그만일까요!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Cloud),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이 연결된 ICBM 시스템이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침투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평등화하는 ‘긱 경제’(임시직 경제)”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광석 교수는 같은 책에서 “미국에서는 우버의 프리랜서 운전자나 아마존닷컴의 ‘메커니컬 터크(Mechanical Turk)’ 등 플랫폼에 매달린 무수한 ‘크라우드 워커(crowd worker)’, 즉 익명의 고용 없는 개인사업자로 추락하고 있다. 이들 글로벌 플랫폼은 분 단위로 쪼개어 자원과 노동을 분할해 제공하면서 극한의 노동시간 관리 경제를 앞장서 구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중소상인들과 이용자를 연결해 유통 수익을 남기는 O2O(온라인 to 오프라인) 배달업체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바람에 무수한 알바 노동자들은 ‘밑바닥 노동’을, 중소 가맹점주들은 본사의 ‘갑질’과 플랫폼 유통업자가 강요하는 유통 수수료에 시달리고 있지 않나요? 제가 일하고 있는 출판업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 편집자, 디자이너, 출판사 대표 등이 클라우드로 연결해 일을 진행하면서 편집자나 디자이너는 사실상 ‘크라우드 워커’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일을 외주노동에 의존하는 ‘1인 출판’이 가능해지면서 출판사들이 신규 채용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김재인은 이런 사태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창조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조성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결국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교육으로 귀결됩니다. 객관식 시험으로 일관하면서 획일화된 인간을 양산하는 우리 교육이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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