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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는 전쟁을 겪지 않았다. 가난했다. 나는 두어 번 크게 아팠지만 행운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잘못된 선택에도 내 삶은 크게 망가진 적이 없다. 배우지 못한 아버지 밑에서 청운동이란 좋은 환경에서 살았고, 상업고등학교를 나와서 좋은 회사에서 일했다. (…) 외환위기 때 국가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기업이 도산해 실업자가 쏟아졌지만 우리 회사는 탄탄해서 안전했다. (…) 어쨌든 살면서 사기꾼을 만나지 않고, 폭력이나 재난에서 내 목숨과 재산을 지켜냈다. ‘그만하면 잘 살지 않았는가!’ 앞으로 남은 세월은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장석주의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yeondoo)에 등장하는 56년생인 이 남자의 아버지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전립선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이 사람은 두 아들에게 25세까지만 투자할 것이니 그 뒤에는 독립하라고 말했지만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

이처럼 부모보다 더 많이 배운 자식들이 좌표를 잃고 흔들리고 있다. 남이 아닌 자식세대를 위해 베이비부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이디어 소설’ <한 생각>(이헌영, 매일경제신문사)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야당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허장훈은 방송연설에서 경제양극화, 계층 간 갈등, 일자리 부족, 심각한 저출산, 세계 1위의 자살, 만성적인 내수 불황, 복지, 고령화사회, 심각한 가계부채, 늘어만 가는 국가채무, 교육불평등, 중산층 붕괴현상, 국민연금 고갈, 남북통일 비용 등 우리나라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을 나열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문제들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또 다른 수많은 문제들까지 그 많은 문제들의 원인은 놀랍게도 단 하나였습니다. 오직 단 하나뿐인 원인! 그것은 ‘경제양극화’였습니다. (…) 사람의 몸도 피가 잘 돌아야 건강하듯이 국가의 피 역할을 하는 돈이 잘 돌아야 할 텐데, 국가의 피, 즉 돈이 부유층에게만 쏠려서 뭉친 채로 고여 있으므로 나라가 동맥경화에 걸려 그 여파로 많은 곳에 병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당인 공화당의 정관영 후보 또한 종이 그래프 퍼포먼스를 통해 양극화의 정도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제1부호의 재산이 18조1000억원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10억원을 뜻하는 1m짜리 그래픽 종이를 이어붙인 1만8100장을 펼치는 데만 9시간15분이 걸리는 것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언론이 중계한다. 그것을 본 국민들은 분노한다. “우리의 재산은 단 1㎝도 안되는데 18㎞라니! 해도 해도 이건 너무하다. 엎어야 한다!”

“국제 구호단체인 옥스팜이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2016년을 기점으로 세계 상위그룹 1%의 재산이 나머지 99%의 재산총액과 같아지고, 그 이후로는 점점 더 많아지리라는 것이다. 더 자극적인 내용도 있었다. 전 세계 하위 50%에 해당하는 35억명의 재산을 다 합쳐봐야 세계 최고 부자 61명의 재산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요점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이미 한계에 이르렀는데도 상황은 지금도 계속해서 극점인 1%에서 초극점인 0.1% 쪽으로 쏠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허장훈 후보는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 국민 5000만명 중 하위 50%의 국민, 즉 2500만명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국가 전체예산의 1.7%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계속 위로 쏠려가는 이 쏠림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국가의 돈(세금)을 사용하지 않고, 부유층과 중산층만 있고, 빈곤층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아이디어”이자 “양극화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골칫덩어리 문제들을 한꺼번에 거의 깨끗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한 생각’이다. 그것은 상위 부유층 30%가 하위 30%를 직접 도와서 빈곤층을 없애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한 생각’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지지율이 월등하게 높은 여당 후보가 “야당 후보가 적임자”라며 전격적으로 사퇴한다.

국민을 현혹하고 선동해서 “자본주의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려는 좌파적인 공약”을 재벌들의 모임인 전경련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동참하기로 결의한다. 전경련은 한 술 더 떠서 “지원받는 빈곤층 30%를 40%로 상향 조정하고, 지원하는 부유층은 15%에서 5%로 조정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대다수 보수언론은 격렬하게 비판한다.

소설에서는 ‘한 생각’이 실제로 구현된다. 그 결과 자살률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내수경기가 살아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출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외국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한다. 내수경기가 좋아지자 일자리가 늘어났으며 자연히 임금이 점점 오르는 추세로 변했다.

‘한 생각’이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재산이나 노동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세금으로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기본소득보다는 ‘한 생각’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어떤가? 국회에서 야당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인상분을 정부가 보조하는 4조원대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삭감하려 들며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집권만을 목적으로 한 정치권의 극한 대립을 막기 위해 국민의 직접투표로 뽑힌 상위 2명만을 놓고 추첨을 통해 대통령을 뽑는 ‘한 생각2’라는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권력은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민이 뽑아주지 않으면 권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권력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다. 따라서 권력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 또한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 생각’은 한 번쯤 생각해볼 아이디어가 아니겠는가!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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