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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온라인 세상 어딘가는 ‘5평 주택’ 관련 논쟁으로 뜨거웠다.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으로 제공되는 공간이 대부분 5평 내외의 원룸이라는 사실을 비판한 트위터 이용자로부터 촉발된 것이다. 

그의 잇단 트윗을 요약해 옮기면 “청년주택에 살면서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사회초년생이니까’ ‘시세보다는 저렴하니까’ 등의 말은 우리가 좁고 작은 방에 살아도 ‘괜찮은’ 이유가 될 수 없다”이다.

이 논쟁은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매일, 셀 수 없이 키보드 배틀이 일어나지만 모두 보도되는 것은 아니다. 

이 트윗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했다는 점에서다. 감정이 격해지면 격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고, 가능한 한 많은 인간을 격하게 만들수록 훌륭한 ‘어그로’다. 이 트윗처럼.

감정을 자극받은 사람들은 저마다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 ‘좁고 작은 방’에 살아봤거나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내 얘기였다. 청년임대주택은 아니지만 나는 약 5평의 주택에 살고 있다. 전에 살던 곳에 비해 여러모로 나아져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저 트윗에 따르면 나는 배알도 없는 녀석이었다.

내 경우에는, 공간의 크기가 최저주거기준(1인 가구 기준 4.24평)을 넘긴다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지 않는다. 그 안을 구성하는 것들이 더 중요했다. 이를 테면 방음, 방수, 단열, 채광, 통풍 같은. 

이전 집은 집 안에서 벽 너머 옆집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방음에 취약했고, 단열이 거의 되지 않음은 물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40초 이상 나오지 않았다. 건물이 오래되어 어딘가 틈이 생겼는지, 밖에서 들어온 것이 분명한 길벌레와 마주치기 예사였고, 무엇보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10개월간 지속된 천장의 누수였다. 건물주는 고쳐준다고 말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며 10개월 동안 희망고문을 했다. 날마다 영토를 확장하는 붉고 푸른 곰팡이까지 품고 살아갈 정도로 내 신경줄은 튼튼하지 못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형편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적지 않은 돈을 받는 건물주들의 심보에 이가 갈린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서울에 살고 싶은 사람들은 많으니까 가격이 오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토지와 달리 서비스는 물리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편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평균은 왜 이 모양인지? 

집주인들이 자기들은 살지 못할 집을 세를 내놓으면서 교통의 편의성을 무기로 또는 시세를 이유로 값을 비싸게 받는 행태에 화가 난다. 대학교 기숙사나 청년공공주택이 들어설 때, 더는 세입자를 호구잡지 못할까봐 반대 시위 벌이는 것을 보고는 인류애를 상실할 뻔했다.

집주인들의 양심만 믿고 있을 수 없기에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교통편의성이 높으면서도 저렴하고, 품질 괜찮은 공공주택을 공급함으로써 형편없는 주택을 시장에서 도태시키는 것이다. 

최근 화제를 모은 서울 충정로와 구의동의 청년주택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듯 보인다. 충정로 청년주택의 기본 임대조건은 보증금 1656만원에 월 임대료 7만원. 월 40만~50만원의 임대료를 내던 청년이 이곳에 입주한다면 가처분소득이 높아질 터이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저축도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보증금인데, 시에서는 청년들의 보증금 부담을 고려해 최대 4500만원까지 무이자로 임차보증금을 빌려주는 등의 방안을 내년 입주 전까지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평형보다는 공급량이다. 충정로역 주택 499실 중 49실만이, 강변역 주택 84실 중 18실만이 공공임대 주택이다. 49실과 18실. 임대 시장을 흔들기에는 턱없어 보인다. 5평인데도 공급량이 이렇게 적은데, 10평이면 더 적었을 것 아닌가.

한정된 자원으로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나아지게 할 것인가. 우리 각자 더 나은 삶을 요구할 때 이 점을 함께 고민하면 더 좋은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이때, 제안하는 내용에 삶의 구체성이 반영되면 좋겠다. 디테일이 결여된, 선입견 가득한 비판으로 행복의 가능성마저 부정당한, 5평 주택에 살고 있는 1인은 격하게 황당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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