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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기자분들이 지적을 하도 많이 해서 퇴직해도 아무 데나 바로 못 가요.”

지난 9월28일 열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 배석한 국토부 고위 관료가 한 말이다. 그는 이날 명예퇴직한 실장(1급)을 가리켜 “한동안 집에서 쉬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일까.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에서 받은 ‘2013~2017년 9월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재취업 현황’을 보면 76명이 산하기관과 이익단체에 재취업했다. 6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지난달 국토부 퇴직 공직자 2명이 산하 공공기관과 대형 건설사 자회사에 재취업했다.

국토부 고위 공무원이 재취업한 곳은 산하기관뿐 아니라 SR, 이레일, 공항철도 같은 민자사업 기업도 있다. 이익단체는 더 많다. 교통투자평가협회, 한국골재협회, 자동차산업협회, 항공진흥협회 등 20곳도 넘는다.

공무원이 휴직하며 민간기업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민간근무 휴직제’를 경제부처가 얼마나 이용했는지 취재하던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해 자료를 요청했다. 민간기업과 공무원의 유착 통로가 됐다는 지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국토부만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하창훈 국토부 인사팀장은 지난 1일 “국정감사로 바빴고 상부의 결재도 받아야 하며 인사혁신처와 협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전형필 국토부 운영지원과장은 이튿날 “국정감사 기간이 끝났는데 자료 요청에 급히 응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했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국토부 고위 공직자 2명은 지난해 손해보험협회와 현대건설에서 1억원 넘게 받으며 일했다. 최근 국토부 내부에선 산하 한국도로공사 간부급 퇴직자들이 휴게소 사업을 독점한 소수 업체에 재취업했다는 올해 국감 지적을 쉬쉬하는 분위기도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퇴직 공직자와 민간기업의 유착이 꼽히면서 재취업을 규제하는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됐다. 국토부는 세월호 교훈을 잊었는지 ‘내 사람’을 챙기는 시대착오적 온정주의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퇴직해도 아무 데나 못 간다’는 국토부 고위 관료의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경제부 |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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